“빅스텝(0.50%포인트)이 필요한 시기인가?”
먼 나라 일로만 여겨졌던 빅스텝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리는 7월 13일까지 남은 한 달 동안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예상보다 빠른 물가 상승세에 기대인플레이션마저 잡으려면 빅스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가운데 빅스텝을 하더라도 물가 안정보다 경기 둔화 우려가 크고 가계부채가 1900조 원에 육박하는 만큼 부담이 크다는 반대 목소리도 팽팽하게 맞선다. 이와 같은 대립은 한은 내부뿐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빅스텝이 ‘퍼펙스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에 맞서는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지 판단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먼저 한은은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렸기 때문에 빅스텝(0.50%포인트 인상)을 해야 할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6월 9일 통화신용정책 보고서 설명회 당시 박종석 부총재보는 “물가가 오르고 있지만 경기 측면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나 원자재 가격 상승, 중국 경기 둔화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빅스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건 아니지만 0.25%포인트씩 하는 것이 아직은 적절하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빅스텝 가능성이 사라진 것으로 해석했다.
다만 다음 날인 6월 10일 이창용 한은 총재가 한 창립기념사를 근거로 빅스텝 가능성이 열렸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 총재는 “우리가 다른 나라 중앙은행보다 더 먼저 통화정책 정상화를 시작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웃돌고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정상화 속도를 높여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더 이상 우리가 선제적으로 완화 정도를 조정해 나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은이 그동안 빅스텝 배제 이유로 선제적 금리 인상을 들었는데 더 이상 선제적이지 않다면 앞으로 빅스텝도 가능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한은에서 빅스텝 불씨를 처음 지핀 것도 이 총재다. 그가 기존 한은 문법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 만큼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빅스텝 역시 얼마든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배경에서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은의 빅스텝 인상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김 연구원은 “이 총재가 창립기념사에서 ‘선제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발언하며 정책 운용의 ‘민첩성’과 ‘유연성’을 함께 언급했고, 한국의 물가 상승세도 기대 이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까지 고려하면 한은의 빅스텝 인상 가능성은 꽤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금통위 내부서도 논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금통위원들은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지만 속도만큼은 의견이 극명히 갈린다. 14일 한은이 공개한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5명 모두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한 금통위원은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기준금리를 빠르게 중립수준으로 높여나가는 것이 중장기 시계에서 거시경제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발언해 금리 인상 속도를 강조했다.
발언 강도가 더 센 금통위원도 있다. 또 다른 금통위원은 “기준금리 연속 인상에 따라 국내 경기회복세 둔화, 민간부채의 상환 부담 증가, 취약부문 부실화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나 여러 지표를 점검해 본 결과 아직 감내할 수준”이라며 “앞으로 통화정책은 완화 기조를 빠르게 축소하는 방향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빅스텝을 시사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반대로 속도 조절을 주문한 금통위원도 등장했다. 해당 금통위원은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되 향후 경기여건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라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같은 총량 지표뿐 아니라 과거 성장 추세에 비해 크게 뒤처진 부문의 회복 여부에도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향후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신중하게 조절하면서 성장 손실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빅스텝 논쟁은 한은 내부뿐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퍼질 가능성도 있다. 최근 몇 달 동안 경제 관료 출신 몇몇 인사들은 언론 인터뷰나 기고 등을 통해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현재 인플레이션이 초과 수요가 아닌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나타난 만큼 금리를 올려도 물가 억제 효과 없이 경기만 악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코로나19 이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을 선택한 일반 투자자도 빠른 금리 인상이 달가울 리가 없다.
이 총재가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한 달 동안 발표 예정인 각종 경제지표를 어느 때보다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16일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가 나온다. 연방준비제도(Feb 연준)가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해 정책금리가 1.50~1.75%가 된다면 한국은행 기준금리(1.75%)와 같아진다.
국내 물가 상황도 주목해야 한다. 이달 29일 한은은 6월 소비자동향조사를 통해 기대인플레이션을 발표한다. 5월 기대인플레이션은 3.3%를 기록했다. 금통위원 다수가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을 우려하고 있는 만큼 시장 예상보다 강한 긴축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다음 달 5일은 통계청이 6월 소비자물가를 발표한다. 5월 소비자물가는 5.4%로 13년 9개월 만에 최고치다. 이후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은 상태인 만큼 6%대 돌파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5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한은의 올해 물가 전망치가 4.5%로 높아졌음에도 이보다 더 오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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