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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금융위기급 '투매'…'구원투수' 연기금도 팔아 치워

[짙어진 'R의 공포'에 코스피 2400 붕괴]

외국인 시가총액 비율 30.9%

2009년 이후 13년 만에 최저

'공포 지수' VKOSPI 치솟고

PBR도 금융위기 수준에 근접

증시 하락 - 반대매매 '악순환'

수급 공백에 韓경제 수출 의존 커

세계 증시 중 최약체 수준 방어력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외국인투자가들이 한국 증시 투매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소폭 순매수로 돌아섰던 외국인들은 이달 들어 20일까지 4조 8948억 원어치의 주식을 팔아 치웠다. 반면 국내에서는 연기금이 ‘구원투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개인들의 빚투 물량에 대한 반대매매가 쏟아지며 맥없이 주가가 무너지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올 들어 처음 종가 기준으로 2400 선이 붕괴되며 금융위기 수준의 주가순자산비율(PBR)까지 밀렸다. 국내 증시가 유독 세계 주요 증시 중에 최약체 수준의 방어력을 보이는 이유는 이 같은 수급 공백 외에도 근본적으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적 특성상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의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투자가는 유가증권시장에서 6653억 원어치, 코스닥에서는 1482억 원어치를 내다 팔았다. 총 매도 금액 8142억 원으로 이달 들어 세 번째로 많은 매도액을 기록했다. 가장 많이 판 날은 6월 9일 1조 5077억 원, 10일 9011억 원 순이었다. 외국인들은 이달 중 16일 하루를 제외하고 순매도세를 보이며 국내 증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2일부터 20일까지 4조 3543억 원을 팔아 치웠다.

최근 국내 주식 중 외국인 보유 비율도 지속해서 떨어지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의 외국인 보유 시가총액 비율은 30.9%로 나타났다. 이는 최고점이었던 2020년 2월 39.3%보다 8.4%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 8월 18일(30.83%) 이후 약 1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날 기관투자가는 4448억 원을 순매수했다. 하지만 연기금 등은 오히려 92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연기금 등은 지난주에도 570억 원을 팔아 치웠다. 통상 주가가 밀릴 때 구원투수 역할을 하는 연기금조차 주식을 내다 판 것이다.

‘공포 지수’라고도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도 약 3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VKOSPI는 이날 26.37로 장을 마감해 3월 8일에 기록한 연고점 기록 28.95를 깼다. VKOSPI는 코스피200 옵션 가격을 이용해 산출한 변동성 지수로 기초 자산의 미래 변동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를 반영한다. 통상 주가 지수가 급락할 때 급등해 공포 지수라고도 불린다.



외국인들의 매도 폭탄에 증시가 속절없이 밀리면서 국내 증시의 PBR도 금융위기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 DB금융투자에 따르면 국내 주식시장의 확정 실적 기준 PBR(trailing PBR)은 0.98배로 금융위기 시점의 0.83배에 근접하고 있다. 강현기 DB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최근의 인플레이션에 따라 기업들의 장부 가치가 올라가고 현재의 주당순자산가치(BPS)에 즉각 반영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한국 증시의 실제 PBR은 현 수치보다 더 낮을 가능성이 크다”며 “바닥권 수준의 밸류에이션”이라고 말했다.

최근 증시의 하락으로 반대매매 물량이 급증하고 이어서 다시 지수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7일 기준 반대매매 금액은 264억 228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달 초 약 127억 원보다 106.60% 증가했다. 반대매매는 투자자가 외상으로 산 주식(미수거래)의 결제 대금을 납입하지 못하면 증권사가 주식을 강제로 팔아 채권을 회수하는 것을 말한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반대매매로 추정되는 물량이 하방 압력을 가중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국내 증시가 최악을 향해 치닫는 배경에 경기 침체 우려가 있다고 분석한다. 제조업과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적 특성상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재선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을 가능성을 시장이 계속해서 반영하고 있다”며 “경기 침체가 오면 우리나라, 대만 등 수출 국가들의 경기 전망이 안 좋을 수 있어 ‘패닉셀(공포에 사로잡혀 손실을 감수하고 매도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주가가 과도하게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코스피지수의 바닥을 쉽사리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투자 심리가 위축돼 변동성이 큰 장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연구원은 “2300 선이 코스피지수의 1차 지지선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지지선이 붕괴되면 2008년도 당시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경기 침체가 왔던 것처럼 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하반기 코스피 예상 범위를 2450~2850 선 내에서 등락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깨졌다. 지수가 2400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저평가 영역에 들었다고 본다”면서도 “유동성 위기가 또 오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반등을 위해서는 인플레이션 둔화 신호가 나타나고 환율이 안정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연구원은 “PBR 1배 이상 회복 시기를 단언하기 어려운 구간”이라며 “경기부양 정책이 나오거나 인플레이션이 잡히는 신호가 보여야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달러 강세가 진정돼야 위험 회피 심리가 줄어들고 미국 외에 다른 나라에서도 경기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인식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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