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천에 거주하는 직장인 한석윤(42·가명) 씨. 최근 가계부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이대로 지출이 늘어난다면 곧 가계부는 적자다. 팬데믹 이후 닥친 인플레이션을 피부로 직접 느낀다. 정보기술(IT) 업계에 불어 닥친 임금 인상 바람으로 월급이 오르기는 했지만 지출은 그보다 훨씬 많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맞벌이 부부인 한 씨의 5월 월수입(근로소득+기타소득)은 960만 원으로 3년 전인 2019년 5월(890만 원)보다 7.8%(70만 원)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월 지출액은 788만 원에서 932만 원으로 18%(144만 원) 증가했다. 월수입 대비 지출액 증가 속도가 2배가량 빠른 셈이다.
22일 서울경제가 주요 시중은행의 고객 샘플링으로 코로나19 전후의 소득과 지출을 분석한 결과 전 연령대에서 소득 대비 지출 증가율이 더 높았다. 물가 상승으로 기본 식비부터 교통비까지 오르지 않은 것이 없다. 여기다 금리까지 가파르게 높아지며 커진 이자 부담은 지갑을 닫게 만든다. 그나마 2030 미혼 세대는 급여 인상분을 그대로 보복소비에 쓰지만 3040 기혼 세대는 육아·교육비 등 필수 지출이 무섭게 늘어나며 허리띠를 조르다 못해 아예 묶어야 할 형편이다. 한 씨의 경우 육아 비용이 급등했다. 맞벌이로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다 보니 매달 150만 원은 고정 지출 비용이 됐다. 입주 베이비시터는 꿈도 못 꾼다. 한 씨는 “코로나19 전에는 조선족을 쓰는 데 월 150만 원 정도면 가능했지만 지금은 300만~400만 원에도 못 구한다"며 “물가가 더 오른다고 하니 꼭 써야 할 곳 외에는 지출하지 않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했다.
물가 부담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는 현상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현실이 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출이 둔화하면 내수 소비가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이미 일반 서민들은 물가와 금리 인상으로 소비를 줄이고 있다. 의류나 여가비는 물론 필수 지출인 통신비까지 가능한 항목을 모두 줄여나가고 있다. 실제로 젊은 층에서 통신비를 줄이기 위해 알뜰폰을 쓰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LG유플러스에 따르면 U+알뜰폰의 MZ세대 가입자 비중은 2019년 35%에서 올해 1분기 42%로 증가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물가 상승에 적극 대응하지 못할 경우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며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성장 엔진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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