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연일 역사상 고점을 갈아치우던 곡물 가격의 상승세가 최근 꺾이고 있다. 미국·러시아 등에서 밀 생산량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농산물 생산에 필요한 천연가스 등의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곡물값이 올라 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르는 ‘애그플레이션’ 우려가 연내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관련 상품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대신 밀 선물 상장지수증권(ETN)(H)은 이달 들어 15.62% 떨어졌다. 이 상품은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거래되는 밀 선물 가격의 등락률을 추종하는 상품으로 연초 이후 40% 넘게 상승했지만 5월 17일 종가 기준 1만 7245원을 기록한 후 주가가 내내 빠지고 있다.
대신 밀 선물 ETN(H)뿐 아니라 기타 상장지수펀드(ETF)·ETN 상품들도 이달 들어 하락세로 들어섰다. KODEX 3대농산물선물(H)ETF(-7.62%), TIGER 농산물선물Enhanced(H)ETF(-6.86%), 하나 레버리지 콩 선물 ETN(H)(-10.03%) 등은 일제히 하락했다. 같은 기간 미국 시장에 상장된 밀 ETF인 WEAT(-8.57%), 밀·옥수수·대두 등 주요 곡물 선물에 투자하는 ETN인 GRU(-4.43%) 등도 떨어졌다.
올해 고공 행진하던 이들 상장지수 상품이 최근 하락세로 돌아선 것은 팜유·소맥 등 국제 곡물 가격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1일(현지 시간) 기준 CME에서 팜유 가격은 이달 들어 21.60% 하락했다. 세계 최대 팜유 수출국인 인도네시아가 올해 4월 일시적으로 내린 팜유 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하면서 글로벌 식용유 시장에 숨통이 트인 영향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옥수수 선물 가격 역시 전날 3.03% 빠진 데 이어 이날 0.62% 떨어졌다. 소맥 선물은 지난 3일 동안 6.4% 뒷걸음질쳤다. 최근 기온이 올라가면서 북미에서 밀 공급 전망이 밝아지고 있는 데다 러시아 역시 올해 풍작으로 밀을 대규모로 수확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곡물 가격이 3분기 또는 연내 안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최근 곡물가 하락세는 경기 침체 공포가 원자재 가격을 짓누른 데 따른 영향도 있어 향후 추세를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농산물은 에너지 시장만큼이나 구조적인 수급 불균형을 보이지 않고 있어 장기적인 상승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오 연구원은 이어 “농산물 생산의 비용인 유럽의 천연가스, 암모니아, 그리고 비료 가격 등이 4~5월 들어 하락하기 시작했고 주요국들의 수출제한 발표 빈도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주요국들의 우크라이나 곡물 우회 수출 방안 모색도 곡물가 안정화 기대를 높이는 요인으로, 지금 시점에 (원자재) 관련 상품 매수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조상훈 신한금융투자 연구원 역시 “곡물가 상승세가 이제 정점을 찍고 소폭 조정 기간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한편 곡물가 안정화가 국내 식품 업계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식품 업체들은 통상 3~6개월분 원재료 재고를 비축해두기 때문에 국제 곡물 가격 변화는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 조 연구원은 “곡물 선물 가격이 빠지더라도 단기적으로 식품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올해 4분기 혹은 내년 1분기에나 (국내 식품 업계가) 단가 하락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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