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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부총리는 왜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는 말을 했을까 [조지원의 BOK리포트]

임금 1% 오르면 소비자물가 0.3% 상승

대리운전 13.2%·간병도우미 7.4% 올라

임금인상 계속되면 한은 긴축 강도 세져

경기 꺾일 뿐 아니라 자산 충격 불가피

가계·기업 모든 경제주체 고통 감내해야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28일 마포구 경총에서 간담회 참석자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기업인 간담회에서 “물가 상승과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한 발언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상황에서 직장인의 희생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학계에서는 추 부총리가 일반적인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한 것은 맞지만 기대인플레이션이 10년 만에 4%대 육박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누가됐든 해야 할 말이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기대인플레이션을 바탕으로 근로자 임금이 오르면 기업이 제품가격을 올리고 이에 실질구매력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임금 인상을 다시 요구하는 ‘임금·물가 악순환(wage-price spiral)’이 발생한다는 것은 경제 이론적으로 명확하기 때문이다. 산업연관분석(2010년 기준)에 따르면 임금 1% 상승은 소비자물가지수를 0.3%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이 이미 물가에 반영되는 상황에서 급격한 물가 상승을 제어하려면 가계, 기업 등 모든 경제주체가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학계 설명이다. ‘임금 인상 자제’ 발언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추 부총리는 지난달 30일 “기업도 생산성 향상을 통해 가격 인상 요인을 최대한 흡수해달라”라고도 말했다. 가계는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기업은 마진 축소를 감내하면서 국제유가 등 대외 물가 상승 요인이 진정될 때까지 버텨야만 이번 인플레이션을 짧게 끝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추 부총리 발언을 단순한 말실수로 끝내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서울 시내 한 점심뷔페 식당이 직장인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네이버 임금 오를수록 대리운전·간병인 비용

한국은행 조사국이 4월 발표한 ‘최근 노동시장 내 임금상승 압력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임금 필립스곡선으로 추정한 결과 이직률, 빈일자리율,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을수록 임금이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직률과 기대인플레이션이 1%포인트 오를 경우 임금이 1%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임금 상승 충격은 외식을 제외한 개인서비스 물가에 영향을 끼쳤다. 외식은 임금보다 농축수산물 등 원재료 가격 영향을 더 크게 받기 때문이다.

5월 개인 서비스 물가는 5.1% 오르면서 2008년 12월(5.4%)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외식 제외 물가(3.5%)는 외식(7.4%) 물가보다 낮았지만 일부 품목은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5.4%를 넘어섰다. 대리운전이용료(13.2%), 국내단체여행비(10.4%), 국내항공료(10.2%), 여객선료(9.2%), 세차료(8.7%), 엔진오일교체료(8.4%), 영화관람료(7.7%), 간병도우미료(7.4%), 가사도우미료(5.9%) 등이 큰 폭으로 올랐다.

한국은행은 큰 폭의 명목임금 오름세나 기업의 판매가격 인상 폭 확대 움직임을 봤을 때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은 이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물가 요인을 크게 받는 정액급여 오름세가 확대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상용직 정액급여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지난해 1분기 2.7%에서 2분기 3.5%, 3분기 3.6%, 4분기 3.7%에서 올해 1분기 4.1%로 올랐다. 일부 업종은 특별급여를 확대하면서 명목임금 오름폭도 커졌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기업과 네이버·카카오 등 정보통신(IT) 기업 임금이 오르면 대리운전, 간병도우미 비용 등이 비싸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대인플레이션의 물가 파급 경로. 한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 캡쳐


가계·기업 비용 부담 전가하면 인플레 길어져

임금이 오르고 이로 인해 제품 가격이 오르는 물가 상승이 무서운 것은 지속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임금 상승→제품 가격 상승→다시 물가 상승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대인플레이션은 임금·가격 설정, 소비·투자 등에 영향을 끼쳐 실제 물가로 파급되는 만큼 관리가 필요하다.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한 금통위원은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비용부담을 제품가격과 임금에 전가하는 소위 인플레이션 동학(dynamics)의 변화가 나타날 경우 인플레이션이 자체적인 지속성을 갖게 돼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임금상승률과 실업률이 반비례한다는 ‘필립스 곡선’이 더 이상 맞지 않기 때문에 임금·물가 악순환 가능성이 줄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필립스 곡선은 실업률이 낮으면(완전고용) 물가가 높아지고 반대로 실업률이 높으면 물가가 낮아진다는 이론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업률과 물가 상승률이 모두 낮은 상태가 유지되면서 고용, 임금, 물가 간 파급이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옛말이 됐다. 일시적인 현상인지 당분간 지켜봐야 하지만 코로나 이후 필립스 곡선이 되살아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3일 오후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냉면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기업도 마진 축소돼도 가격 인상 자제해야

무엇보다 임금·물가 악순환이 나타나면 한은은 긴축 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6월 기대인플레이션이 3.9%로 역대 최대인 0.6%포인트 오르자 7월 금통위에서 사상 첫 빅스텝(0.50%포인트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기대인플레이션은 통화당국이 실제 집계 발표되는 물가 만큼 예의주시하는 지표”라며 “기대인플레이션 지표가 큰 폭 상승하면서 7월 ‘빅스텝’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한은의 긴축 강도가 강해지면 경기 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주식·부동산·가상화폐 등 각종 자산 가치도 떨어지게 된다. 임금이 올라도 보유 자산 가치는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물가 충격이 왔을 때 각 경제주체가 고통을 감내해야 빨리 안정이 된다”라며 “서로 미루기 시작하고 비용 부담을 전가하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급격하게 올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더 고통스러운 경기 침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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