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세계 미디어·정보기술(IT) 업계 거물들의 모임인 ‘선밸리 콘퍼런스’ 참석을 올해에도 결국 포기했다. 유럽 출장을 다녀온지 얼마 안 돼 출국 명분이 적은 데다가 재판 일정이 이어지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시스템 반도체 관련 인수합병(M&A) 논의도 시일이 다소 걸릴 가능성이 생겼다. <관련기사> ▶[단독] 이재용 '선밸리 모임' 참석 가닥…6년 만에 글로벌 네트워크 재가동
5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이달 6~9일(현지시간) 미국 아이다호주의 휴양지 선밸리에서 열리는 ‘앨런&코 콘퍼런스’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2016년 이후 벌써 6년째 불참이다.
이 부회장은 애초 이 행사에 참여하는 방안을 준비했다가 취업 제한 상태에서 출국을 강행하는 데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으로 사업적 만남이 아니라 민간 사교 성격을 띤 행사라는 점이 결정적 포기 사유가 됐다는 후문이다. 이 부회장은 현재 해외에 나가려면 일일이 법무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관련 1심 재판에도 매주 출석하고 있다. 이달 초 검찰 인사로 공판 검사들이 대규모로 교체된 점도 변수가 되지는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답방 시기가 겹치지 않은 점도 발목을 잡았다.
이 행사는 미국 투자은행(IB) 앨런&컴퍼니가 1983년부터 매년 주최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회의다. 지명을 따 선밸리 콘퍼런스라고도 부른다. 첨단 산업과 투자 업계 거물들을 주로 초청하기에 ‘억만장자의 여름 캠프’라는 별칭도 있다. 올해 행사에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앤디 재시 아마존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등이 참석한다.
이 행사는 단순 사교 활동뿐만 아니라 거대 기업의 수장들이 M&A나 협력 체계 구축 등을 논의하는 장으로도 유명하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의 2013년 워싱턴포스트 인수, 디즈니의 1996년 ABC 방송사 인수 논의 등이 모두 이 자리에서 시작됐다. 이 부회장은 2014년 쿡 CEO와 직접 만나 삼성전자와 애플의 미국 외 지역 스마트폰 특허 소송 철회 계기를 마련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상무 시절인 2002년부터 거의 매년 이 행사에 참석하다가 국정 농단 사태가 불거진 2017년부터 발길을 끊었다. 이 부회장은 구속 수감 중이던 2017년 법정에서 “선밸리는 1년 중 가장 신경 쓰는 출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한국인 가운데 유일하게 이 행사에 초청될 자격을 갖춘 인물이다. 당초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번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할 경우 시스템 반도체 관련 M&A 기회를 모색할 것으로 관측했다. 대만 TSMC를 제치고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위’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M&A가 필수란 점에서다. 앞으로 5년 간 그룹 투자 금액을 450조원으로 잡아놓을 정도로 실탄도 충분하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앞으로 미국을 찾을 시기로 윤 대통령의 방미 기간을 유력하게 지목했다. 순방 경제사절단만큼 명분이 확실한 계기가 없는 까닭이다. 미국은 지난 5월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평택 공장을 직접 방문할 정도로 삼성전자와의 공급망 협력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는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 착공식 등 현지에서 풀어야 할 현안도 많다.
이 부회장은 가석방으로 풀려난 직후인 지난해 11월 이후 지금까지 미국을 방문하지 않고 있다. 대신 지난달 7~18일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을 둘러봤다. 이 부회장은 유럽 출장 귀국길에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그 직후 삼성전자는 사실상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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