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제주체들이 국제유가 급등을 산유국에 지불하는 세금(tax)으로 간주하면 어떻게 될까?”
한국은행 주요 부서인 통화정책국과 조사국을 이끄는 국장들이 블로그를 통해 임금·물가 상호작용에 대한 견해를 드러냈다. 국제유가가 오르더라도 세금이라고 생각한다면 기업은 가격 인상 대신 생산성을 높이고 가계도 실질 소득 감소분을 감내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고 다시 가격이 오르는 2차 파급효과가 발생하지 않아 손실이 최소화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2차 파급효과가 불가피하다면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 안정을 위해 중앙은행은 신속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금융통화위원회가 사상 첫 ‘빅스텝(0.50%포인트 인상)’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설명한 셈이다.
18일 홍경식 통화정책국장은 한은 홈페이지에 ‘국제원자재발(發) 물가상승에도 통화정책으로 대응해야 하는 이유(공급發 물가상승의 2차 전이를 막아야)’라는 제목의 블로그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한은은 이창용 총재 취임 이후 소통을 위해 금융·경제 현안에 대한 임직원의 분석과 견해를 담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홍 국장은 ‘공급 측 요인으로부터 촉발된 인플레이션에 통화정책이 어떤 측면에서 소용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한은을 포함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큰 폭의 정책금리 인상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국제유가 수준이 한 차례 급등한 상태에서 머문다고 가정했다. 그렇게 되면 물가상승률은 높아지고 총소득은 줄어드는 유가 충격이 발생한다. 이때 소득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1970년대 미국처럼 완화적 통화정책을 시행한다면 2차 파급효과가 빨라진다. 기대인플레이션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때문에 실질임금 감소→노동공급 감소→총소득 감소→금리인하 효과 무력화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소득이 늘지 않고 인플레이션만 높아지기 때문에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는 폴 볼커식 고강도 긴축을 단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때 모든 경제주체가 국제유가 급등을 산유국에 지불하는 세금이라고 간주하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홍 국장은 “기업은 비용상승에도 불구하고 제품가격 인상 대신 생산성 제고로 대응하고, 가계는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실질소득 감소분을 받아들이는 경우를 생각해보자”라며 “그러면 높아진 물가와 낮아진 총소득 수준에서 새로운 균형이 형성되고 임금·물가 상호작용, 즉 2차 파급효과는 발생하지 않는다”라고 적었다. 이렇게 되면 1년 뒤 전년 동기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이전으로 되돌아오고 기대인플레이션이 안정돼 있기 때문에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공급충격이 장기화돼 2차 파급효과가 나타났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때 중앙은행이 대응을 실기한다면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돼 더 큰 폭의 금리 인상을 피할 수 없다. 반면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기대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킨다면 총소득이 줄어드는 폭은 실기했을 때보다 축소될 수 있다는 논리다. 물가가 조기 안정되는 만큼 경제도 빠르게 성장궤도로 진입할 수 있다.
홍 국장은 “공급충격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 경제 전체가 ‘구성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으로 연결되고 다시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경제주체가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으로 결정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고물가 상황이 고착되면서 모두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난 13일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발언과 동일하다.
김웅 조사국장 역시 ‘경제전망 점검 및 주요 리스크 요인’을 통해 물가·임금 상호작용 강화를 우려했다. 김 국장은 “높은 물가 오름세가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임금 상승률도 꾸준히 높아지면서 물가·임금 간 상호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 최근 20년 우리나라 물가·임금 자료를 분석해보면 소비자물가는 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임금에 영향을 미치고 또 임금은 인건비 비중이 높은 개인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김 국장은 “물가 오름세가 크게 높아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질 경우 물가·임금 간 상호작용이 강화되면서 고인플레이션이 고착될 수 있으므로 적극적인 정책대응을 통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확산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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