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는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가운데 식량난과 폭염이 추가적인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주요국의 경기 둔화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정점이 밀릴 경우 정책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다.
31일 한국은행은 ‘글로벌 식량 보호주의의 경제적 영향 및 향후 리스크 요인’ 보고서를 내고 식량 가격 불안 요인을 지적했다. 최근 식량 가격이 급등하면서 세계 각국이 식량 수출을 금지하는 등 식량 보호주의가 확산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물가가 오르고 성장세는 꺾일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7월 기준 32개국이 54개 품목에 대한 수출 금지, 수출 물량 제한, 수출세 부과 등의 조치를 시행 중이다.
한은이 밀의 가격 변화를 실증 분석한 결과 전체 교역량 가운데 수출 제한 비중이 1%포인트 확대될 때마다 가격이 2.2% 오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식량 보호주의에 따른 공급 제한은 개별 국가의 국내총생산(GDP)도 최대 0.1% 감소시켰다. 우리나라 GDP도 0.03%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량 가격 상승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확대할 뿐 아니라 저소득 국가의 실질소득을 감소시켜 정치 불안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식품 가격이나 연료 등 경제적 요인에 따른 사회불안이 정치적 요인보다 더 큰 경기 위축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어느 때보다 국가 간 협력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에 갈등이 고조돼 단기에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날 현대경제연구원도 ‘추가적 인플레이션 압력, 폭염’ 보고서를 통해 “폭염으로 서민 경제와 관련 있는 품목을 중심으로 하반기 물가 상승세가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구원이 1991년부터 2021년까지 폭염 강세 연도와 약세 연도를 나눠 상·하반기 평균 물가를 분석했다. 폭염 강세일 때 하반기 물가 상승률은 상반기보다 0.2%포인트 높았고 특히 농축수산물 물가는 0.5%포인트 더 높아졌다. 반대로 폭염 약세일 때는 하반기 물가 상승률이 상반기보다 0.3%포인트 낮아지면서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올해가 폭염 강세 연도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7월 27일까지 평균 폭염 일수는 6.5일로 폭염 약세 연도의 평균 폭염 일수(5.8일)를 이미 넘은 상태다. 폭염 강세 연도는 15.9일이다. 연구원은 올해 폭염이 최상위 수준으로 발생한다면 하반기 평균 물가 상승률은 4.8~5.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노시연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농축수산물 가격 불안정은 식탁 물가 상승 등 가계 소비 부담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어 관련 품목에 대한 물가 안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