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주식시장에서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는 상장사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자금을 조달해 시설 투자를 집행하는 곳도 있지만 자회사 채무를 갚는 데 쓰거나 마케팅 비용 등으로 활용하는 곳은 주주 반발에 주가가 하락하는 등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2일부터 4월 15일까지 유상증자를 공시한 상장사는 96개사로 전체 규모만 6조 12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 86개사가 2조 929억 원을 조달한 것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선 삼성SDI(1조 7282억 원)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2조 3000억 원)를 제외하면 1조 9730억 원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최근 한 달 만에 상장사 43곳이 유상증자에 나서면서 사실상 매일 한 건 이상씩 공시가 나오는 실정이다.
눈에 띄는 것은 운영이나 채무상환을 목적으로 하는 자금 조달보다는 시설과 기타 자금을 중심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시설자금은 1485억 원에서 1조 3927억 원, 타법인 증권 취득자금은 1632억 원에서 3조 1398억 원으로 큰 폭 늘어난 반면 채무상환자금은 2978억 원에서 2197억 원으로 줄었다. 삼성SDI·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제외하더라도 비슷한 흐름이다. 통상적으로 운영이나 채무상환 목적의 유상증자는 회사 현금 흐름이 부족하거나 과도한 부채를 보유 중이라는 의미로 해석돼 악재로 인식된다. 반면 시설투자는 회사가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는 만큼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문제는 타 법인 증권 취득자금이나 기타 자금 목적이라고 공시한 뒤 자회사 채무를 변제하는 등 우회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주주 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진행될 경우에는 일반 투자자 반발도 커지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 오텍은 14일 주주 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183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타 법인 증권 취득자금 목적인 120억 원으로 오너 일가가 소유한 종속회사 씨알케이가 추진하는 유상증자에 참여할 예정이다. 오텍 일반주주들의 자금이 결국 씨알케이 채무를 변제하는 데 활용된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상습적인 유상증자로 반발을 사는 곳도 있다. 코스닥 상장사 셀리드는 지난해 8월 231억 7500만 원을 조달한 데 이어 지난달 241억 5000만 원을 다시 유상증자로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이브이첨단소재도 414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겠다고 공시한 이후 주가가 큰 폭 하락하기도 했다. 시가총액(860억 원) 절반 가까운 자금을 한 번에 조달하는데 이 중 100억 원을 자회사 에쓰씨엔지니어링 전환사채 인수에 활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주주 불만이 커진 영향이다. 이브이첨단소재 역시 2023년 195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한 차례 진행한 바 있다.
코어라인소프트는 상장한 지 1년 6개월 만에 311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다. 확보한 자금 대부분은 영업 및 마케팅 비용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엑시온그룹은 2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한 자금의 절반을 가상자산 등을 매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회계학과 교수는 “재무비율 등으로 인해 유상증자를 통해 투자 자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사례도 있는 만큼 자금 사용 목적이나 방식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상장사들도 유상증자를 하게 된 배경 등을 일반주주에게 상세히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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