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기록 삭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법리 적용과 관련해 ‘회의록 폐기’ 사건의 대법원 판단을 참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이희동 부장검사)는 지난달 28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사건의 판결문을 분석하며 서해 피살 사건에 적용 가능한 법리를 검토하고 있다.
대법원은 대통령기록물법 위반과 공용전자 기록 등 손상 혐의로 기소된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비서관의 재상고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들은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는 2007년 10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초본이 담긴 문서관리카드를 무단으로 삭제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2심은 회의록 초본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결재가 없어 이를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이 문서관리 카드에 최종 결재를 하지는 않았지만, 회의록을 열람하고 확인한 만큼 사실상 결재가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파기환송심은 대법원과 같은 취지로 삭제된 회의록을 대통령 기록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회의록 초본이 첨부된 문서관리카드를 삭제한 것은 공용전자 기록 등 손상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 판결 중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전자기록’, 즉 공용전자 기록에 대한 법원의 정의에 주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은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전자기록에는 공문서로서 효력이 생기기 이전의 서류나 정식 접수 및 결재 절차를 거치지 않은 문서, 결재 상신 과정에서 반려된 문서 등이 모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설사 삭제된 문서가 미완성이라 해도 공용전자 기록 등 손상죄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이 같은 대법원 판단에 비춰 ‘공용전자 기록’의 범위를 폭넓게 해석하고, 수사 중인 사건들에서 이러한 기록을 적법한 절차 없이 삭제·수정하라는 지시가 있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국정원은 앞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박지원 전 원장을 고발하면서 공용전자 기록 등 손상 혐의를 고발장에 적었다.
같은 사건에서 국방부가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밈스)에 올라온 기밀 정보를 삭제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들은 보고서를 삭제·수정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거나, 삭제된 정보의 원본이 남아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결재가 이뤄지지 않은 문서까지 공용전자 기록에 포함된다’는 대법원의 포괄적인 기준에 비춰보면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게 검찰 내 시각이다.
법조계에서는 ‘회의록 폐기’ 사건 판례가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의혹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당 의혹으로 고발된 서훈 전 국정원장이 사건 보고서를 임의로 수정했다는 의혹(허위 공문서 작성)을 받는 만큼, ‘공용 기록’에 대한 대법원의 정의가 향후 법리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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