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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경영 무관한 기업 쏟아지는데…"총수 지정제 시대착오적"

'대기업 동일인 제도' 개선 세미나

플랫폼 기업 등장 등 환경변화

100대 기업 매출 비중 45.6%

GDP 비슷한 호주 등보다 낮아

대기업 3분의 1은 지주사 체제

상호·순환출자 등 편법 감소세

일괄적 규제 개선 필요성 제기

9일 서울 국회에서 열린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 지정제도 30년, 이대로 괜찮은가?'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자유기업원




경제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대기업 동일인(총수) 제도는 시대착오적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총수에게 친족 관련 자료 제출 의무를 부과하고 자료를 누락할 경우 형사처벌까지 부과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김지홍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개최한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 지정제도 30년, 이대로 괜찮은가?’ 세미나에 참석해 동일인의 지정 자료 제출 의무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현재는 대기업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지정 자료 제출 의무가 생겨 친인척 등이 보유한 주식 현황을 보고해야 하고 자료 허위·누락 제출이 발견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부과된다.

김 변호사는 “SK 소속 회사가 186개에 달하고 각 기업집단 동일인의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이 100명이 넘는 상황에서 동일인 1명이 매년 기업집단 지정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확인하고 챙기는 것은 불가능하고 적절하지도 않다”며 “동일인에게는 공정위와 같은 ‘조사 권한’이 없어 관련자에게 자료 제출을 강제할 수 없고 자료의 진실성이나 누락 여부를 확인할 수도 없는데 자료 제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국가 업무를 동일인에게 전부 떠넘기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김 변호사는 “동일인 관련자 자료는 동일인 관련자에게 직접 요청하고 그에게 진실성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공정거래법상 다른 자료 제출 위반 행위에 과태료가 부과되는 만큼 지정 자료 제출 의무 위반도 과태료 부과 대상으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와 관련해 민혜영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 과장은 “동일인에게 자료 제출 의무를 부과하지 않을 경우 지정 자료 제출 의무 이행 자체가 담보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면서 “형사처벌과 관련해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은 공정위도 인지하고 있지만 형벌을 완전히 폐지하거나 과태료로 전환하는 경우 자료 제출 의무 이행이 담보되지 않을 우려가 있으므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반대 의견을 표했다.





정회상 강원대 경제학 교수는 대기업집단 제도가 도입된 1986년과 현재의 경제 환경이 판이하다는 점을 들어 제도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100대 기업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58.1%에서 2020년 45.6%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30대 기업 매출 집중도 역시 42.1%에서 31.1%로 줄었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의 매출 집중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9개국 중 15위로 미국(11위)·일본(12위)은 물론 국내총생산(GDP) 수준이 비슷한 캐나다(3위)·호주(7위)보다도 낮았다.

정 교수는 시장 집중도가 높다고 반드시 사회 후생이 낮아지지는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업결합 사건에서는 경제력 집중으로 독과점이 발생하는지 판단해야 하지만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자체를 억제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정 교수는 “시장 집중도가 높아져도 비용이 낮은 기업이 많이 생산하고 비용이 높은 기업이 적게 생산해 생산 효율성이 증가하면 사회 후생은 높아진다”고 말했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호주 변호사)는 네이버·카카오 등 ‘친족 경영’을 하지 않는 새로운 대기업집단이 등장하고 대기업집단들이 대거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등 기업 지배 구조 환경이 변화해 일괄적인 대기업집단 규제를 개선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봤다. 지 교수는 “공정위가 지배 구조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대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한 결과 올해 대기업집단의 3분의 1 이상은 지주회사 체제”라며 “이에 따라 상호 출자와 순환 출자 등 편법적 수단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됐고 소유·지배 괴리도도 2007년 46%에서 32%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쟁법은 경쟁 제한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지 기업의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대기업을 규제하는 법이 아닌데 공정거래법은 기업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대기업집단(또는 경제력 집중)을 규제한다”며 “한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도 대기업집단 자체를 규제하지 않는 상황에서 동일인 지정 등을 포함한 대기업집단 규제를 유지하는 것이 국민 경제에 과연 도움이 되는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1999년에 떼어낸 것처럼 대기업집단 규제를 공정거래법에서 떼어내 공정위 소관의 개별 법률로 입법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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