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288330)가 폐섬유증 신약 후보물질인 ‘BBT-877’의 임상 2상에 실패하면서 상장 유지에도 경고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코스닥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브릿지바이오는 BBT-877의 기술수출을 추진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관리종목에서 벗어나려 했기 때문이다.
15일 브릿지바이오에 따르면 특발성 폐섬유증(IPF) 신약 후보물질 BBT-877은 글로벌 임상 2상 톱라인(주요 지표) 결과 일차 평가변수였던 24주차 강제폐활량(FVC) 변화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개선 효과를 확인하지 못했다. 특발성 폐섬유증은 폐 조직이 점차 딱딱해지며 폐 기능이 저하되는 희귀 질환이다. 평균 생존기간은 3~5년에 불과하다.
미국, 호주, 폴란드, 이스라엘 등 5개국에서 진행된 이번 임상 2상에는 총 129명의 특발성 폐섬유증 환자가 참여했다. 톱라인에 따르면 일차 평가 변수인 24주차 강제폐활량 변화가 약물군과 위약군 모두에서 관찰됐으나 양쪽 집단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P=0.385). 통상 P값이 0.05 이하일 때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했다고 본다. 강제폐활량은 위약군(-50.2)에서 약물군(-75.7)보다 더 적게 감소했다. 위약군의 폐 기능 회복 효과가 더 좋았다는 의미다.
임상 2상 실패로 브릿지바이오가 추진하던 BBT-877의 빅파마 기술이전은 어려워졌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는 이날 진행한 긴급 기업설명회(IR)에서 “BBT-877에 대한 기대감이 커서 글로벌 상위 빅파마 다수와 구체적인 협의를 시작하고 있었으나 현재 톱라인 결과로 즉각적인 기술이전 협의는 쉽지 않아진 게 분명하다”며 “추가 데이터를 받아보고 하위 분석 등을 거쳐 빅파마와 다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브릿지바이오가 지난달 코스닥 관리종목에 지정됐다는 점이다. 3년 중 2회 이상 법차손(법인세비용 차감 전 계속사업 손실)이 자기자본의 50%를 초과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는 관리종목 지정 이후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이듬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를 진행할 수 있다. 그동안 브릿지바이오는 BBT-877 기술수출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관리종목 지정을 해소한다는 전략을 추진했으나 이것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브릿지바이오는 지난해 유상증자로 215억 원을 조달했지만 BBT-877 또는 후속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비용을 줄일 수도 없어 진퇴양난에 빠지게 됐다. 이 대표는 “남아 있는 현금은 200억 원이 조금 넘는다”며 “BBT-877을 다른 질환에 적용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확인하는 한편 ‘BBT-207’과 ‘BBT-301’ 등 후속 과제에 관심 있는 전략적·재무적 투자자와 신속히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릿지바이오가 우선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기존 BBT-877의 적응증 변경 가능성이다. 이 대표는 “동물실험 단계에서 다른 적응증과 관련해 BBT-877과 면역항암제를 병용하면 면역항암제에 내성을 나타냈던 원인을 일부 제거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었다”며 “섬유화로 심장의 판막이 굳어지고 두꺼워져서 협착증을 일으키는 질환에서 BBT-877의 약효가 좋은 것을 확인했고, 난소암 등 몇몇 암종에서도 약효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어 “그동안 BBT-877의 다른 적응증 관련 소통하지 않았던 것은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가 1년에 약 11만 달러로 고가이기 때문”이라며 “고가 약물과 저가 약물을 동시에 시장에 출시할 수 없어 그동안 고가를 받을 수 있는 특발성 폐섬유증을 중심으로 소통했지만 이외에 다른 적응증까지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찾아서 가능성을 모색해볼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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