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은행 대출 규모가 한 달 만에 12조 원 넘게 늘어나면서 7월 기준 역대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원자재 가격과 환율이 오르면서 기업의 자금 수요는 늘었는데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은행 대출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것이다.
1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7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7월 말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1137조 4000억 원으로 전월 대비 12조 2000억 원 증가했다. 7월 기준으로 2009년 통계 작성 후 역대 최대 증가 규모다. 은행 기업대출은 올해 1~7월 71조 7000억 원 급증했다.
먼저 중소기업 대출이 전월 대비 6조 8000억 원 증가하면서 6월(5조 4000억 원)에 이어 높은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금융 지원이 이어지는 가운데 분기 말 일시상환분 재취급과 부가가치세 납부, 시설 자금 수요 등으로 대출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대출은 전월 대비 5조 4000억 원 증가하면서 6월(6000억 원) 대비 큰 폭으로 확대됐다.
특히 대기업을 중심으로 은행 대출이 급증한 것은 자금 조달의 필요성은 커졌는데 회사채 발행 등 직접 금융 조달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최근 기업은 설비투자 등으로 시설 자금 수요가 여전한 가운데 원자재 가격 상승과 원화 가치 하락 등으로 운전 자금 수요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회사채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여건이 상대적으로 나은 기업들은 은행에 손을 내미는 상황이다. 은행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되자 기업대출 영업을 강화해왔다.
은행 대출과 달리 회사채는 투자 심리 위축으로 발행 부진이 계속되면서 순상환되고 있다. 7월 회사채 1조 5000억 원이 순상환되면서 5월(-1조 6282억 원)과 6월(-1조 1675억 원)에 이어 세 달 연속 순상환을 기록했다. 다만 기업어음(CP)·단기사채는 우량물을 중심으로 순발행 전환하면서 1조 2000억 원 늘었다.
황영웅 한은 시장총괄팀 차장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로 우리나라 금융시장도 영향을 받는 과정에서 회사채 신용 스프레드(국채와의 금리 차)가 큰 폭으로 확대됐다”며 “이에 회사채 직접 발행이 부진해지자 기업들이 직접 금융보다 대출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하반기에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는 만큼 기업들의 자금 수요는 계속되겠지만 자금 조달은 여전히 쉽지 않다. 특히 비우량 기업일수록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한은의 금융기관 대출행태서베이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대기업에 대한 대출 태도는 2분기 3에서 3분기 -6으로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수가 플러스면 은행 등의 대출 태도가 완화하고 반대로 마이너스면 깐깐해진다는 뜻이다. 중소기업도 6에서 -6으로 낮아지는 등 대출 문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연속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가계대출은 증가세가 멈춘 양상이다. 7월 은행 가계대출은 전월 대비 3000억 원 줄어들면서 한 달 만에 감소 전환했다. 주택담보대출이 2조 원 늘어나는 동안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이 2조 2000억 원 줄었기 때문이다. 주담대는 주택 매매 관련 자금 수요 둔화에도 집단 및 전세자금 대출 취급이 늘어나고 있다. 한은은 “대출금리 상승, 정부의 대출 규제 지속으로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기타대출의 감소 폭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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