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에도 전기요금을 제때 올리지 못한 탓에 재무구조 악화가 누적되면서 빚을 내 빚을 돌려 막는 차입 경영의 굴레에 빠지고 있다. 특히 최근 6개월 새 만기 이자액을 포함한 한전의 차입금 및 사채 규모가 30조 원 넘게 급등하며 비상등이 켜지자 급기야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한전의 올 상반기 차입금 및 사채 규모는 122조 3508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0조 원 이상 증가했다. 한전의 차입금 및 사채 규모는 2020년(82조 3262억 원)만 해도 안정적인 수준으로 관리돼왔으나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이 본격화된 2021년 91조 9504억 원까지 늘었다.
문제는 한전의 부채 규모가 앞으로 더 가파르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7월 액화천연가스(LNG) 1톤당 수입가격이 1034달러로 1년 전(498달러) 대비 2배 이상 치솟은 데다 이달 호주 뉴캐슬 연료탄 가격 역시 역대 최고치인 톤당 436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유럽 내 가스 가격은 1년 전보다 10배 이상 치솟은 상태다.
전기 생산 단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반면 전기요금은 10월 1㎾h당 4원 90전 인상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동결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공공요금을 연거푸 올릴 경우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전기요금의 추가 인상에 소극적인 입장이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올해 한전의 영업손실은 30조 원에 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은 정부가 지난해 처음 도입한 연료비연동제가 제대로 작동할 경우 내년 전기요금이 2배 가까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전 내부 분석에 따르면 전기요금이 1%포인트 오를 때마다 이익은 2946억 원 늘어난다. 반면 정부는 올해처럼 ‘물가 안정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내년도 기준연료비 인상을 억누를 가능성이 높을 뿐더러 한전 적자 보전을 위한 재정 투입 카드도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정부가 관련 법 개정을 통해 한전의 회사채 발행액 한도를 늘린 뒤 에너지 가격 하락을 기대하는 일종의 ‘기우제’식 대응에 나설 것으로 전망한다. 22일 국회에 출석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가 연말이면 여력이 남지 않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확대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필요하다. 현재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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