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는데도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의 자영업·소상공인 대출이 8개월 만에 8조 원 넘게 늘어났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국내 물가 상승세도 뚜렷해지면서 각종 운영 비용 지출이 늘어난 영향이다. 여기에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의 여파로 대출금리마저 빠르게 오르면서 개인사업자들의 한숨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의 23일 기준 자영업·소상공인 대출 잔액은 261조 8959억 원으로 한 달 새 1조 3529억 원 불었다. 올 초 대출 잔액과 비교해보면 증가 속도가 심상찮다. 연초인 1월 7일 기준 잔액이 253조 321억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8개월 만에 8조 8638억 원이나 늘었다. 사실상 매달 1조 원씩 증가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미국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환율 변화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이 가파른 데다 국내 물가 오름세마저 커지며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의 대출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3%로 1998년 11월 이후 23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으며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1998년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5.2%로 제시한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여신 담당자는 “환율이 뛰면서 수입 원자재 가격도 오른 데다 물가 상승의 영향으로 운영비 등 지출이 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사를 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대출을 받지만 뛰고 있는 대출금리에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금융 리스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가 9월 코로나 대출 만기 연장을 멈추며 대환대출과 저리특례자금 지원, 새출발기금 등을 조성했지만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 소상공인들의 추가 대출 상환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 등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소호대출 금리는 올 들어 올랐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최근 3개월(5~7월)간 4대 은행에서 취급된 개인사업자 신용대출 금리는 지난해 10~12월보다 우리은행을 제외하고 0.69~0.84%포인트 올랐다. 소호대출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담보대출의 경우 4대 은행의 평균 금리는 모두 0.68~0.89%포인트 뛰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용대출의 경우 주로 금융채 1년물을 사용하는데 단기채 금리가 계속 상승세를 보여 당분간 대출금리는 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산업은행의 경우 해당 기간 개인사업자 신용대출 금리가 2.55%에서 6.48%로 인상 폭이 가장 컸다. 해당 기간 취급한 개인사업자의 신용대출이 단건에 그쳐 차주의 신용도 등에 따라 금리 인상 폭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개인사업자의 경우 소호대출뿐 아니라 개인 명의로 가계대출을 받아 사업 자금에 활용하는 경우도 많아 부실 대출이 발생하면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나이스평가정보가 공개한 ‘개인사업자 대출 시장 모니터링’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을 보유한 차주 314만 3000명 중 77%가량인 241만 6000명이 가계대출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개인사업자 대출만 보유한 차주는 23%인 72만 8000여 명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개인사업자 대출을 받은 차주가 보유한 가계대출은 353조 3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8.3% 증가했다. 이 중 은행권은 166조 9000억 원, 비은행권은 186조 5000억 원이다. 나이스평가정보 측은 “개인사업자 대출, 가계대출 모두 갖고 있는 차주만 해도 1분기 사이에 24만 명 늘었다”며 “개인사업자 명의로 사업자 대출을 받고 개인 명의로 가계대출을 받아도 결국 최종 빚을 갚아야 할 책임은 모두 개인사업자에게 있다는 점에서 가계대출까지 고려해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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