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일 발표한 ‘2023년 예산안’의 핵심 화두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이어진 확장재정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보편적 복지’에서 ‘맞춤형 복지’로 복지 정책의 중심축을 이동하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내년 이후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확장재정을 선택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지금은 우선 방만 재정에 ‘스톱 버튼’을 누르고 재정 정상화를 추진해야 될 때라고 우리 경제팀 전체가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런 기조에 맞춰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 결과 내년도 정부 예산은 총 639조 원으로 올해인 607조 7000억 원 대비 5.2% 늘어나는 데 그쳤다. 문재인 정부 기간(2018~2022년) 매년 총지출을 10.81%(추경 포함)씩 늘려온 것과 비교하면 지출 증가율이 절반 이하로 낮아진 것이다.
실제 대부분의 분야에서 지출 증가율은 올해 본예산 증가율 대비 절반 이하 수준이다. 내년도 전체 예산의 35.4%를 차지하는 보건·복지·고용 예산의 경우 올해(217조 7000억 원)는 지난해 대비 예산 증가율이 8.5%에 달했지만 내년도 예산(226조 6000억 원)에서는 올해 대비 4.1%로 상승률이 낮아진다.
교육 예산은 지방에 자동 배정되는 교부금을 제외할 경우 올해 19조 1000억 원에서 내년 18조 9000억 원으로 감소하고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도 같은 기간 지출 예산을 10.2%(28조 원→25조 1000억 원)나 덜어냈다. 소상공인 손실보상금 등이 포함된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예산의 감소율도 18.0%(31조 3000억 원→25조 7000억 원)에 이른다. 이는 올해 본예산에 3조 원 넘게 배정됐던 코로나19 소상공인 재기 지원 예산이 줄어든 효과다. 이 밖에 문화·체육·관광 예산도 6.5% 축소됐다.
복지 정책의 기조를 맞춤형으로 전환하는 것도 눈에 띈다. 구직을 포기했다가 다시 취업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청년에 한해 최대 300만 원의 도약 준비금을 지급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과거에는 연령이나 자산·소득 기준만 충족하면 무차별적으로 지원금을 뿌리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정부 재정이 외형상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체질 개선에는 실패했다는 점이다. 신체에 비유하면 몸무게를 줄이기는 했지만 지방을 걷어내는 대신 근육 손실이 더 많은 모양새다.
이날 발표된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이 기간 주로 복지 예산 등이 포함되는 의무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매년 7.5%에 이른다. 가뜩이나 인구 고령화 추세가 빨라진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과제로 내세운 부모급여(2024년 매달 100만 원 지급)와 병사 월급 인상, 청년원가주택 등이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재정 부담을 늘리며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26년이 되면 전체 예산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5.6%까지 치솟게 된다.
반면 연구개발(R&D) 예산이나 SOC와 같은 재량지출은 이 기간 연평균 1.5% 증가해 제자리걸음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문재인 정부 때 짠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과 비교해 보면 2025년 기준 재량지출 예산은 문재인 정부 때 348조 4000억 원에 이르는 반면 윤석열 정부 때는 오히려 30조 원 넘게 줄어든 316조 8000억 원에 머물게 된다.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막상 복지 지출에는 거의 손을 대지 못하다 보니 미래 투자 예산이 급감하는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재정학회장을 지낸 황성현 인천대 교수는 “재정승수가 큰 SOC 예산 등을 삭감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에 마이너스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가부채 증가 속도에 제동을 건 것만으로도 일단 합격점을 줄 만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올해부터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묶는 재정준칙을 도입해 윤석열 정부의 마지막 해인 2026년 국가채무를 1344조 원 이내에서 관리할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 때는 2025년 국가채무가 140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됐었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찍어내는 국채 발행량도 줄어 시장금리를 내리는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는 “선진국으로 갈수록 의무지출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고 재정 건전성을 지킨다는 측면에서 괜찮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며 “장기적으로는 증세 방안도 함께 고려해 건전성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