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 8월 말 열린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잭슨홀미팅)을 비중 있게 다룬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초긴축 통화정책을 재확인한 이때를 기점으로 글로벌 금융·외환시장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극도로 커지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은은 연준의 긴축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국가들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한미 정책 금리 역전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이로 인한 영향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정부로부터는 독립했지만 연준으로부터는 아니다”라고 한 발언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은은 보고서를 통해 “국내외 금융시장에서는 주요국 통화정책 방향과 경기 전망 관련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리·주가 등 가격 변수 변동성이 확대됐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이 이어질 경우 금리 인상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가 강화되면서 금융시장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연준의 긴축 속도가 점차 빨라지면서 한미 금리 역전 폭도 확대되고 기간도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다만 한은은 과거 세 차례의 한미 정책 금리 역전 기간을 살펴보면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이 대체로 유입된 만큼 순유출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과거 연준의 세 차례 정책 금리 인상기를 살펴보면 모두 한미 정책 금리가 역전되면서 최대 87.5~150bp(1bp=0.01%포인트)까지 격차가 벌어졌으나 같은 기간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은 169억~403억 달러 순유입됐다.
하지만 과거 사례 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만큼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게 문제다. 한은 역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전될 경우, 중국 경기 부진이 심화할 경우 등을 주요 리스크 요인으로 꼽았다. 이미 러시아는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을 막고 있고 중국 경제도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에너지 가격 상승과 위안화 약세로 이어져 우리 경제를 압박하는 상황이다. 홍경식 한은 통화정책국장도 “과거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증권 자금이 대규모로 유출된 것은 내외 금리 차보다는 글로벌 금융위기나 중국 금융 불안과 같은 글로벌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라며 “국제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리스크 요인을 주목하면서 외국인 자금 흐름을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폭탄은 신흥국이다. 달러 강세에 채무가 많은 국가들이 부도 위험에 노출되고 있어서다. 이미 스리랑카·이집트 등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거나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아르헨티나(2891bp), 튀르키예(667bp), 남아프리카공화국(248bp) 등 일부 국가는 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급등하기도 했다. 한은은 “최근 일부 대외 건전성 지표가 약화된 만큼 신흥국 금융 불안이 국내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7월 상품 수지는 11억 8000만 달러 적자로 10년 3개월 만에 적자 전환했다. 한은은 8월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우리 수출의 마지막 보루 격인 반도체 업황마저 악화 국면 초입이라 우리 경제의 하강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환율 상승 속도 역시 우리나라 경제 펀더멘털 대비 빠른 수준이라는 평가다. 올해 5월 26일부터 8월 24일까지 원·달러 환율의 전일 대비 변동성은 0.46%로 2021년(0.32%)은 물론이고 2020년(0.42%)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달 들어 환율이 연일 연고점을 경신한 만큼 변동성은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7일 장중 한때 원·달러 환율은 1388원을 넘어서면서 1400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금까지 환율이 1400원을 넘은 것은 1997년 외환위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단 두 차례뿐이다. 한은은 앞으로 한미 간 금리 격차를 적정 수준에서 관리하고 물가도 잡기 위해 0.25%포인트 수준으로 금리를 올릴 것임을 시사했다.
이 때문에 한은이 우려하는 것은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이다. 한은은 대출금리 상승,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 등 자금 조달 여건이 나빠지면서 갈수록 집값 하방 압력이 확대될 수 있다고 봤다. 금리 인상의 영향이 가시화하면 저소득층이나 지나치게 많은 빚을 낸 가계를 중심으로 소비가 제약될 가능성도 있다.
이날 이상형 한은 부총재보는 “최근 주택 가격이 하락 전환한 데는 집값 고점 인식이나 가계대출 규제, 경제 불확실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며 “금리 상승에 따른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는 하반기 이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리 상승에 따른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는 분석이다. 한미 금리 차에 따른 지속적인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재확인하면서도 자산 시장 하락→소비 위축→경기 침체의 악순환에 대비해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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