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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지금은 금리로 환율·물가 잡을 때…자본 유출 안전지대 아니다”

◆강경 ‘매파’ 출신 이일형 전 금통위원

환율 급등은 한미 금리격차 先반영…통제하면 투기 불러

인플레·금리 세계적 동조화…섣부른 경기방어 경계해야

통화긴축, 고통스럽지만 부채 의존 ‘허약체질’ 개선 쓴약

정책역량 시험대…자산거품 서서히 제거해 연착륙 유도

이일형 전 금통위원은 “통화 긴축은 고통스럽겠지만 부채에 의존한 경제 허약 체질을 개선하는 쓴 약이 될 수 있다”며 “물가를 확실히 잡기 전에 섣부른 경기 부양에 대한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욱 기자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역전 현상이 임박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20·21일 제3차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아 우리 기준금리(2.5%)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도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했지만 미국의 통화 긴축 속도가 더 빨라 양국 간 금리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은 연준을 쫓아 기준금리를 계속 올려야 하는가. 경기가 버텨준다면 물가와 환율 상승을 막기 위해 선택할 수 있겠지만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 우리로서는 미국의 기준금리를 쫓아갈지 여부를 놓고 고심해야 하는 정책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금통위원(2016~2020년)을 지낸 이일형 벨기에 자유대 선임연구위원과 만나 글로벌 통화 긴축 전개와 정책 대응 방향 등을 들어봤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20여 년간 근무한 국제금융통으로 금통위원 시절 태생적 ‘매파(통화 긴축 선호)’인 한은 출신 금통위원보다 더 매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금통위원 재직 시절 수차례 매파 성향의 소수 의견을 낸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통화정책이 경제 상황에 비해 ‘완화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는 선진국처럼 부동산 가격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실제보다 낮게 평가된다. 정책적으로 통제하는 공공요금 같은 경직성 물가 비중도 높다. 또 다른 측면은 2019~2020년 글로벌 금융 위기 발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금융자산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특정 비율을 초과할 때 글로벌 차원의 재조정, 다시 말해 ‘위기’가 발생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 기초 체력에 비해 금융·실물 자산의 가치가 높은 ‘금융 불균형’이 갈수록 심화해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를 어느 정도 억제할 필요가 있었다. 해외발(發) 충격이 시작되면 소규모 개방 국가는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와 같은 글로벌 금융 위기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보는가.

△해외발 리스크는 여전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확장적 재정·통화정책이 자산 버블을 더 키웠다. 최근 인플레이션과 통화 긴축으로 위험도가 다소 완화됐지만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한은이 현재 2.5%인 기준금리를 어느 수준까지 올릴 것으로 보는가.

△한은의 ‘포워드가이던스(선제 안내)’를 고려한 시장의 기준금리 예상은 연말까지 2.75~3% 수준이다. 관건은 이후인데 현 시점에서 추가 예측은 큰 의미가 없다. 포워드가이던스도 ‘정량(기준금리 수준)’보다는 확실한 방향성만 제시하는 것이 더 유용할 것으로 본다.

해외 단기 금융시장 발작 가능성은 상수


지난달 26일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경제정책 연례 심포지엄인 ‘잭슨홀미팅’에 참석한 제롬 파월(오른쪽부터) 연준 의장,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부의장, 존 윌리엄스 뉴욕연은 총재가 회의에 앞서 여가를 즐기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연준이 이달 하순 예상대로 3차 자이언트스텝을 밟아 한미 간 금리 역전이 발생한다면 자본 유출 우려가 큰데.

△기준금리 차이만으로 자본 유출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금리 격차보다는 채권 수익률 곡선의 상대적 기울기, 다시 말해 성장과 물가 전망, 대외 신인도, 국내 금융 불안 요인 등 펀더멘털이 더 중요하다. 1997년 외환 위기 때는 단기 외채 돌려막기를 계속하는 가운데 외환 보유액도 적은 데다 고정환율에 가까운 환율 정책을 펼쳐 미증유의 충격을 받았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외환 위기와 그에 준하는 위기가 닥치는 결정적 요소는 글로벌 단기 금융시장의 신용 경색이다. 이런 상황이면 갑작스레 위험 회피 현상이 발생해 일제히 자금을 회수하게 된다. 이때 자금 회수는 돈 빼기 쉬운 곳,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곳부터 이뤄진다.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은 절대 안전지대가 아니다.

-우리 내부 요인으로 위기가 발생할 여지는 없는가.

△해외 쪽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는데도 내부 사정으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히 취약한 측면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가계 부채 문제가 있지만 금융권이 담보를 잡은 데다 건전성 규제도 엄격하다.

-해외발 신용 경색 충격에 대비하려면.

△단기적으로 적정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고 환율을 안정시키는 정공법 외에는 다른 방책이 없다. 물가를 잡는다면 해외 시장은 한국이 정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간주할 것이다. ‘소버린리스크(sovereign risk·국가의 채무 상환 불이행 위험)’가 떨어져 환율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다만 국내 금융회사가 해외 리스크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세밀하게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은행권에 대한 거시 건전성 관리가 매우 강화됐다. 비은행권도 비슷한 조치가 있었지만 미래의 선제적 위험까지 대비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안다.

-환율 상승이 너무 가파르다. 당국의 구두 개입이 잘 먹혀들지 않는다.

△무질서하고 급격한 쏠림 현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제어(스무딩오퍼레이션·미세 조정)를 해야 한다. 다만 우리나라처럼 물가안정목표제(2%)를 운영하는 경우 환율은 시장이 결정하게 돼 있다. 지금의 환율은 앞으로 발생할 한미 금리 격차를 미리 반영한 것이다. 원·달러 환율은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가령 각각 1억 원을 한국과 미국 금융회사에 맡겼다고 치자. 이동하지 않으려면 금리 차이가 환율의 변화와 같아야 한다. 그런데 금리 격차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환율을 정책적으로 결정해 묶어둔다면 환율 차이를 이용한 투기 세력이 달라붙는다. 자칫하면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 환율 충격이 커질 수 있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한국 나홀로 어려울 듯


인플레이션 공포로 미국 증시가 급락한 1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습.이날 환율은 13년 5개월 만에 1390원을 돌파했다./연합뉴스


-한미 통화 스와프 종료가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다시 체결된다면 좋겠지만 미국의 입장도 있다. 코로나19 초기에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9개국과 통와 스와프를 체결했다. 10대 교역 상대국 가운데 중국을 제외했다. 이때는 세계적 ‘달러 가뭄’ 현상으로 단기 금융시장에서 신용 경색 현상이 발생했다. 미국은 통화 스와프를 맺을 때 이런 관행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우리보다 긴축 속도가 빠르다. 그렇다면 미국을 쫓아 금리를 올려야 하는가.

△한국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깊이 편입돼 있고 연준이 이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인플레이션과 기준금리는 세계적으로 동조화 현상을 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준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금리 수준과 움직임을 나타낼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물가 압력이 흡사한데도 상대적으로 저금리로 대응한다면 물가는 더디게 잡히고 환율 불안이 더 확대돼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내년 하반기부터 사실상 총선 국면에 돌입하면 긴축에 대한 저항감과 금리 인하 압력도 커질 텐데.

△인플레이션을 잡기 전에 섣부른 경기 부양은 경계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은 중기적 관점뿐 아니라 경제활동의 불확실성을 확대해 단기적으로 성장에도 큰 타격을 준다. 기업은 생산량과 임금·가격 결정에 애로를 겪을 것이고 가계 역시 소비에 제약을 받는다. 경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 아닌가. 인플레이션은 가계 부채 증가를 비롯한 금융 불균형과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금융 불균형은 중기적 관점에서 경제를 파괴하지만 인플레이션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인플레이션부터 잡아야 하지만 경제가 너무 주저앉을 우려도 있다.

△단기적 경기 둔화도 고려해야겠지만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을 축소하기 위해 기대 인플레이션부터 잡는 것이 중요하다. 게다가 우리 경제는 오랜 저금리로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사중손실(deadweight loss·비효율성에 의한 손실)’에 발목이 잡혀 있기도 하다. 급증한 가계 부채와 자산 버블, 기업의 이자보상배율 악화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10년 동안 가계 부채가 가처분소득 대비 50% 올랐다. 이는 가계가 지금 수준의 소비를 유지하려면 계속 부채를 늘려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비효율성으로 초래된 손실을 계속 안고 가려면 낮은 금리를 유지해야 하고 그럴 경우 손실을 더 키우게 된다. 이는 잠재성장률 추락으로 이어진다.

물가 못 잡으면 단기 성장 타격·‘소버린 리스크’ 확대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난달 25일 정례 금통위 회의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0.5%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서울경제DB


-경기 침체 없이 물가를 잡을 수 있는가.

△경기 침체가 온다고 단언하기는 이르지만 경기 희생은 불가피하다. 물가를 잡는다 해도 통상적인 경기 둔화기에 비해 저성장 기간이 길 것이다. 고통스럽겠지만 체질 개선에 따른 비용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경기 침체의 악순환을 유발할 수 있는 과도한 긴축은 피해야 한다. 경기 연착륙을 유도해 우리 경제의 뇌관인 과도한 가계 부채와 자산 버블 등을 중기적으로 차츰차츰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거시경제 정책 역량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는 상황이다.

-위기 국면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가.

△장기 저금리로 우리 경제의 ‘허약 체질’이 덮여 있다가 이제 인플레이션으로 누적된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통화 긴축은 우리 경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쓴 약’으로 삼아야 한다. 통화정책으로 우선 기대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하지만 중기적으로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며 ‘사중손실’을 해소해야 한다. 구조 개혁을 통한 생산성 제고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경기 하강 국면에서는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중립 또는 소폭 확장적인 재정 정책이 요구된다. 다만 다소간의 확장적 재정 정책을 동원한다면 긴축으로 타격을 받은 가계와 기업에 한해 선별적 처방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이일형 전 금통위원


◆He is…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정경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워릭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국제통화기금(IMF)에 들어가 20여 년간 근무한 국제금융통이다. IMF에서 전략정책기획국 선임이코노미스트와 베트남 주재 수석대표, 아태국 자문관, 중국 주재 수석대표 등을 지냈다. 이어 주요 20개국(G20) 국제협력대사를 거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과 한은 금융통화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벨기에 자유대에서 국제금융과 통화정책에 대한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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