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 진심인 동네가 있다.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에 있는 병풍도를 말함이다. 매년 10월이면 병풍도에서 ‘섬 맨드라미 축제’가 열린다. 꽃은 벌과 나비만 부르지 않는다. 우리 사람들도 부른다. 동네 꽃들은 ‘지방 소멸’ 시대의 새로운 대안이 되고 있다.
병풍도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 면적 2.5㎢의 병풍도는 ‘천사(1004)’개 섬을 보유했다는 신안군에서도 거의 중간에 있다. 아직 다리가 놓이지 않아 배를 타야 한다. 신안군 압해읍의 압해도 송공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30분가량을 달려 병풍도 아래의 대기점도선착장에 도착한다.
병풍도의 첫인상은 붉은색이다. 마을 집들의 지붕이 온통 붉은색 깔 맞춤이다. 맨드라미 색깔에 맞추기 위해 지붕을 의무적으로 붉은색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한다. 규제의 선한 효과라고도 볼 수 있다.
병풍도에 들어서면 바로 꽃향기가 난다. 섬의 동남쪽에 ‘맨드라미 공원’이 위치해 있다. 맨드라미 꽃밭 면적은 무려 11.5㏊(약 3만 4500평)다. 이곳에 식재된 맨드라미는 총 275만 5000본으로 꽃송이로는 5500만 송이에 달한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전체가 모두 맨드라미로 덮여 있다. 맨드라미는 개화 기간이 60~120일로 최장 넉 달을 핀다. 10월은 마지막 절정기라고 한다. 신안군은 이에 따라 10월 1~10일에 ‘섬 맨드라미 축제’를 연다.
잘 가꿔진 꽃길을 친구·연인과 함께 걸어보자. 어릴 적 흔히 봐왔던 닭 볏 모양부터 촛불 모양, 여우 꼬리 모양 같은 다양한 형태와 여러 가지 색깔의 맨드라미를 접할 수 있다. 꽃밭 중간중간에 있는 기독교 성인상들과 인사를 할 수도 있다.
벤치에 앉아 ‘꽃멍’과 ‘갯벌멍’을 동시에 한다. 언덕에서 내려보는 마을 지붕도 빨간색이다. 주택인지, 꽃밭인지 갑자기 구분이 어렵다. 꽃밭 한편에서는 ‘놀래라 화장실’이라는 이름이 붙은 공중화장실도 아이들을 즐겁게 한다. 안에 서면 밖이 훤히 보여 놀라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아 안전하다.
병풍도에 맨드라미가 심어지기 시작한 것은 2009년이다. 천연색소와 한약제 등으로 사용하기 위해 10곳 농가에서 1.7㏊를 재배한 것이 처음이다. 이후 맨드라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듬해 재배 면적이 3.3㏊로 늘어났다. 예를 들어 맨드라미 꽃차는 면역력을 향상시키고 지혈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맨드라미’의 성공에 신안군은 각 섬마다 꽃을 심고 있다. 선도는 수선화, 팔금도는 유채꽃, 박지도는 라벤더, 도초도가 수국 등 꽃밭이 바다로 확장 중이다. 물론 맨드라미 섬 병풍도가 가장 강렬하다.
이와 관련해 신안군은 꽃을 통해 이웃 목포시·무안군과 함께 ‘권역별 공동 관광 마케팅’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목포시는 문화·예술과 미각 기행을, 신안군은 1004개 섬에서 펼쳐지는 꽃의 향연을 각각 내세우고 있으며 무안군은 남악신도시와 갯벌 등 첨단 문화와 자연 생태를 바탕으로 공조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병풍도의 또 다른 재미는 ‘노두길’로 연결된 전체 7개 섬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다. 병풍도를 중간에 두고 북쪽부터 ‘신추도-병풍도-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진섬-딴섬’ 등이 있다. 병풍도 외 나머지 6개 섬의 면적은 1.5㎢다. 여기서 노두길은 얕은 다리로 밀물 때는 물에 잠기고 썰물 때만 드러난다. 다리를 일부러 높이지 않은 것은 바다의 흐름을 원활히 해 인근 양식장과 식생을 보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병풍도 남쪽의 대기점도와 소기점도·소악도 등에는 12㎞의 ‘순례자의 길’이 있다. 순례길 중간에는 기독교 12사도를 상징하는 작은 예배당 12곳이 아담하게 세워졌다. 모두 국내외 명인들의 작품이다. 덕분에 ‘한국의 산티아고 길’이라며 ‘섬티아고’라는 조어도 만들어냈다.
대표적으로 대기점도선착장 부두에 있는 1번 예배당 베드로의 ‘건강의 집’이다. 그리스 산토리니 색깔로 지어져 순례길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건강의 집 옆에는 화장실이 있는데 모양이 예배당처럼 지어져 처음에는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맨드라미 공원의 놀래라 화장실에 버금하는 ‘성(聖)스러운 화장실’이다. 소악도 건너 최남단 딴섬에는 첨탑을 가진 고딕 양식의 12번 예배당 가롯 유다의 ‘지혜의 집’이 있다. 바다와 맞닿는 미니어처 같은 풍경에 최고의 ‘인생샷’ 구역이다.
순례길을 다닐 때는 물때를 잘 살펴야 한다. 밀물이 들어와 노두길이 잠기면 이동할 수 없어 갇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우연을 가장해 갇히는 것을 더 좋아할까.
병풍도에도 물론 포장도로가 있지만 좁아서 자동차들이 다니기는 불편하다. 마을 주민의 차를 빌리거나 아니면 걸어야 한다. 맨드라미 축제 기간에는 섬 내 셔틀을 운영하지만 평상시에는 이것도 없다. 신안군 관계자는 “유용한 교통수단을 강구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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