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대내외 악재에 국내 외환·금융시장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천장 뚫린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고 바닥 모를 코스피지수는 연일 연저점을 갈아 치우며 2100선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미 시장은 발작을 넘어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지만 소방수로 나서야 할 정부 당국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공포감을 키우며 시장을 집어삼키고 있다. 공포는 또다시 환율 상승과 증시 급락을 유발하고 금융시장의 불안이 실물경제로 옮겨붙는 악순환의 고리가 시장을 지배하는 형국이다.
30일 코스피는 장중 2134.77까지 떨어지며 28일 기록한 연저점(2151.60)을 또다시 갈아 치웠다. 증시가 곤두박질치면서 반대매매 공포도 현실화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위탁매매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금액은 27일 기준 383억 원까지 치솟았다. 통계 집계 이래 사상 최고치다.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중도 2009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 빚을 내 투자했던 계좌의 반대매매 물량 증가는 추가 증시 하락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사상 최악의 무역적자는 외환시장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8월 반도체 생산은 한 달 새 14.2% 감소했다.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마저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경상수지마저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특히 무역수지 악화는 1430원대에 안착한 원·달러 환율을 추가로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외환 당국은 환율 방어를 위해 올 2분기에만 1분기의 두 배에 가까운 154억 900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3차 거시금융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시장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경제팀은 부총리를 중심으로 24시간 국내외 경제 상황 점검 체계를 가동해 한 치의 빈틈 없이 대응해달라”며 “정부부터 긴장감을 갖고 준비된 비상 조치 계획에 따라 적기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한 ‘비상 경제 워룸’을 구축하고 종합적인 시장 안정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가동을 검토 중인 ‘증시안정펀드’ 규모를 20조 원 이상으로 키우고 해외 배당소득에 대한 비과세를 통해 900억 달러를 웃도는 해외 유보금을 국내로 끌어오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국이 일관되면서도 효율적인 정책 결정을 통해 시장 참여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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