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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서린 순교·박해의 흔적…100년전 '聖人의 숨결' 오롯이

■ 한교총 선정 근대 기독교 유적지 10곳

한국교회의 어머니 '새문안교회'부터

3·1운동때 태극기 인쇄 '정동제일교회'

일제만행 고발 '제암리 순국유적지' 등

韓 근대화 기여한 교회의 헌신 보여줘

한교총 순례 정례화…"초심 회복 계기로"

6일 찾은 광주 호남신학대 뒤편 양림산 숲길에 자리 잡은 ‘고난의 길’. 한국에 묻힌 선교사들과 그 가족 45명, 850여 명의 호남 지방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길이다.




6일 찾아간 광주 호남신학대의 뒷산 양림산 한구석에는 45기의 묘가 안장돼 있었다. ‘광주·전남 기독교의 개척자’로 불리는 유진 벨을 비롯해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활동했던 선교사 26명과 가족들의 묘지다. 열 살도 안 돼 풍토병 등으로 숨진 어린아이들도 부모 곁에 7명 묻혀 있다. 고국에서라면 멀쩡했을 자식들이 이역만리에서 신의 부름을 먼저 받았을 때 초기 선교사들이 겪었을 고통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이들의 묘비는 대부분 한국식 이름이 붙어 있다. 그들은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했다. 말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이 땅에 바쳤다. 엘리자베트 요한나 셰핑(한국명 서서평)은 고아와 여성·나환자들을 돌보다가 영양실조에 걸려 5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마지막으로 남긴 재산은 현금 7전, 강냉이 가루 2홉이 전부였다고 한다. 자신의 시신은 의학 실험용으로 기증했다. 비슷한 삶을 살았던 초기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묘역은 전주서문교회 뒤편이나 대구시 청라언덕 등에도 있다.

6일 방문한 전주서문교회 뒤편 선교사 묘역에서 한국교회총연합의 대표회장 류영모 목사가 어릴 때 사망한 선교사 자식들을 추모하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이들은 왜 이 같은 고난을 택했을까. 일부 사학자들은 20세기 서구 열강은 근대화·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제국주의 침략을 합리화했고 선교사들은 그 첨병이었다고 비판한다. 일부 진실을 담고 있지만 이들의 헌신적인 삶은 흔적을 더듬어갈수록 ‘신앙’ ‘희생’ ‘사랑’이라는 단어들 외에는 설명하기 힘들었다. 또한 일제시대 교회들의 과오에도 이들 초기 선교사들은 교육·의료·복지·문화·독립운동 등 한국의 근대화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5~7일 사흘 동안 한국교회총연합의 대표회장 류영모 목사와 사무총장 신평식 목사, 허은철 총신대 역사교육과 교수 등과 함께 138년 기독교 역사에서 각 지역을 대표하는 근대 문화유산 유적지 10곳을 답사했다. 한교총은 앞으로 이들 유적지 관광화와 순례 정례화를 통해 초기 선교사들의 삶을 본받고 한국 교회의 초심을 되찾는 계기로 삼을 방침이다.

답사의 첫 코스인 서울 새문안교회는 1887년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세운 최초의 조직교회이다. ‘한국교회의 어머니 교회’라 불린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절 언더우드는 ‘제국주의의 앞잡이’라는 비판을 들었지만 사실 구한말 고종을 보호하는 등 일제의 침략에 저항했다고 한다. 새문안교회 내 역사관에 들어가면 교회 역사와 근현대사 기록물을 볼 수 있다.

서울 정동제일교회의 파이프오르간. 뒤편 송풍실에서 유관순 열사 등이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몰래 인쇄했다.




1887년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가 세운 정동제일교회는 한국 최초의 서양식 예배당이 들어선 곳이다. 예배당 강단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파이프오르간이 있는데 그 뒤편 송풍실은 두세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좁고 어두운 공간이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이다. 유관순 열사 등 이화학당 학생들이 3·1운동 당시 일제의 감시를 피해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몰래 인쇄했던 곳이다.

경기 화성의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앞 조형물. 기독교인 희생자 23명을 기억하기 위한 23개의 크고 작은 기둥이 서 있다.


경기 화성의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는 1919년 4월 15일 일제가 3·1운동의 주동자를 색출한다는 이름 아래 제암리 감리교회에 마을 성인들을 모아 놓고 불을 지르고 총을 쏜 만행을 잊지 않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다. 참상 사흘 만에 현장을 찾은 프랭크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선교사에 의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제암리 학살 사건을 계기로 기독교는 기존의 정교(政敎)분리 원칙에서 벗어나 사회 참여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충남 마량진 성경 전래지에는 1816년 영국 함선 알세스트호와 리라호가 정박해 성경을 처음으로 전달한 것을 기념해 세운 기념관과 공원이 있다.

전주서문교회는 1893년 윌리엄 레이놀즈(한국명 이눌서)가 세운 호남 지역 최초의 교회이다. 당시 전주에 자리잡은 7명의 선교사들은 보육원 등을 지어 가난 구제에 힘썼고 학교와 병원을 설립해 전주 지역의 근대화에 크게 공헌했다. 7일에는 전주 서문교회 옆에 전주기독교근대역사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전주예수병원 언덕에 선교사들의 모토였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영어 문구가 걸려 있다.


광주 양림 역사문화 마을 일대에도 다양한 근대 유적과 기독교 유적들이 남아 있다. 선교사들의 서양식 자택과 묘지 등은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유진 벨 등 선교사들은 여러 학교를 세우고 제주 지역까지 광범위한 선교 활동을 펼쳤다. 광주 제중병원은 전염병 퇴치, 한센병과 결핵 치료 등에 굵직한 흔적을 남겼다. 허 교수는 “당시 개신교는 목사·교사·의사가 협력하는 ‘삼사 운동’에 따라 선교 활동을 펼쳤다”며 “이 때문에 의료·교육 등의 근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대구 청라언덕에 위치한 서양식 선교사 자택.


대구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묘지가 밀집해 한때 ‘더러운 땅’ ‘똥산’이라 불리던 청라언덕에도 100여 년 전 선교사 유적들이 남아 있다. 대구 경북 최초의 교회인 대구제일교회, 선교사의 주택과 정원, 12기의 묘석이 자리잡은 ‘은혜의 정원’, 3·1운동 유적,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인 박태준의 ‘동무 생각’ 노래비, 의료선교박물관 등이 있다. 류 목사는 “세상은 종교 없이 살 수 있어도, 종교는 세상 없이 살 수 없다”며 “초기 선교사들의 초심을 기억하는 것은 현재 위기에 처한 교회의 본질과 출발점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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