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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우산이 뭐길래…기초부터 따져보는 '핵무장 vs 확장억제'

[민병권의 군사이야기]

여당, 핵개발-핵재배치-핵공유론 점화

대통령실 모호한 대처로 가짜뉴스 난립

'전술핵 재배치'에는 국방당국 부정적

한미 '확장억제' 강화 협의에 방점 찍고

전술핵 정책에 韓 의견 적극 반영 추진

장기적으로는 '핵공유' 가능성 점쳐져

이스라엘식 핵개발 모델도 있지만

NPT제재, 한미동맹 균열 감수해야

미 공군 'B-1B랜서' 전략폭격기들이 지난 2021년 2월 7일 멕시코만 상공을 편대비행하고 있다. B-1B랜서는 유사시 전술핵 무기 등을 싣고 미군 괌기지에서 한반도로 신속 전개되는 주요 전략자산 중 하나다. 사진제공=미 공군




‘확장억제, 전술핵 재배치, 핵공유, 핵무장’

북한이 최근 핵-미사일 위협을 고조시키자 대한민국 내에서도 우리도 핵으로 맞서야 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 구체적인 방법론을 놓고 위와 같은 핵 관련 전문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이들 개념이 뒤죽박죽 혼용되거나, 가짜뉴스들이 나오면서 국민은 한층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이 같은 혼선을 교통정리 해야 할 대통령실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는 식의 모호한 대처로 상황을 방관하고 있다. 여야도 뒤죽박죽식 핵논쟁에 가세하며 지지층 결집,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디어에서도 ‘아니면 말고 식’ 보도가 범람해 국민들은 한층 더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이번 ‘군사이야기’에선 난무하는 핵전략 용어들의 개념을 정리하고 사례별 실현 가능성을 기초부터 따져본다.

미국 핵잠수함 와이오밍함이 지난 021년 9월 17일 케이프 케너배럴 일대 해상에서 전술핵을 탑재할 수 있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트라이던트 II D5LE' 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있다. 사진제공=미해군




◆핵우산 vs 핵무장 무엇이 다른가

핵전략 및 운용에 관한 여러 개념 중 가장 명료하게 대척점에 선 용어가 핵무장과 핵우산이다. 그리고 핵우산을 이행하는 구체적 방법이 전술핵 배치, 확장억제, 핵공유다.

핵무장은 한 국가가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해 보유, 운용하는 것이다. 핵무기 개발이란 핵물질(플루토늄, 우라늄 등)을 확보해 정련-농축한 뒤 이를 폭파시킬 기폭장치 등과 함께 미사일 탄두나 폭탄 등의 형태로 제작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핵무장을 유엔의 핵확산방지조약(NPT) 체제 하에서 공인 받으면 국제적으로 ‘핵보유국’의 지위를 갖게 된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을 속칭 ‘핵클럽 가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까지 공인된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의 5개국뿐이다. 이들 5개국은 모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기도 하다. NPT체제의 공인을 받지 않고 핵무기를 개발하면 북한처럼 유엔 안보리 차원의 외교적, 경제적 제재 및 군사적 압박을 받게 된다.

2021년 기준 주요 핵보유국 및 핵무장국의 핵탄두 재고량 추정치(단위: 개)/자료출처=FAS


핵우산(nuclear umbrella)이란 핵보유국이 자신의 핵무기로 비핵보유 동맹국을 보호해주는 일종의 핵방위공약이다. 쉽게 말해 핵무기를 갖지 않은 동맹국이 적으로부터 핵공격을 당하면 핵을 가진 동맹국이 보복공격을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핵우산이라는 용어는 주로 미국이 주요 동맹국을 핵으로 지켜준다는 의미로 쓰인다. 미국이 핵우산으로 지켜주겠다고 공약한 국가는 한국, 일본과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뿐이다. 따라서 핵우산을 얻는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 못지않은 특권으로 인정받는다.

이종섭 국방부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7월 29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에서 한미 국방장관회담을 진행하며 양국 동맹 발전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방부


◆미국 핵우산 공약의 변주곡

미국이 구소련과 대치하던 옛 냉전시절 핵우산 공약을 이행했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동맹국에 핵무기를 배치해 현지 주둔미군이 운용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역별 안보상황과 미국 내부의 정치적 요인, 핵무기 및 투발수단의 기술적 수준에 따라 변주돼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나 ‘핵공유(nuclear sharing)’ 등의 방식으로 발전됐다. 확장억제는 주로 한국, 일본 등에 대해 적용되고 있다. 유럽 등 나토 회원국에 대해서도 확장억제가 적용되지만 이와 함께 핵공유가 병행되고 있다.

확장억제는 미국이 운용하는 전술핵무기 및 재래식 무기 등으로 동맹국을 지켜주겠다는 공약이다. 이중 전술핵무기는 여전히 미국이 독자적 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전술핵 배치와 흡사하다. 즉, 핵무기의 배치지역과 운용계획 등 핵운용정책은 미국이 주도로 결정하며, 핵무기도 미군의 투발수단(전략폭격기, 핵잠수함, 미사일 등)에 탑재돼 미군이 운용한다. 다만 확장억제체제에선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반드시 동맹국에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역외의 미군기지 등에 배치됐다가 유사시 신속히 동맹국 영토나 인근에 전개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전술핵배치와 차이를 보인다.

미 공군 제412시험비행단 소속 461시험비행대대가 2019년 11월 25일 F-35A 전투기에 탑재된 'B61-12 핵폭탄' 투하 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 핵공유나 전술핵재배치를 결정할 경우 ‘B61계열’의 전술핵폭탄을 운용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사진제공=미국 국방부


유럽에 배치된 미국 핵폭탄 현황. 2019년 기준으로 150개 가량의 'B61' 핵폭탄이 유럽에 배치돼 있다. /그래픽이미지 출처=statista


반면 핵공유는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동맹국과 함께 운용하는 것이다. 핵운용에 대한 정책수립을 동맹국과 함께 협의해 결정한다. 핵무기는 기본적으로 동맹국 영토 내에 주둔한 미군기지에 배치된다. 해당 핵무기가 탑재되는 것은 미군의 투발수단이 아니라 동맹국의 투발수단(동맹국의 전폭기 등)이다. 쉽게 말해 적이 핵공격을 감행하면 동맹국은 영토내 주둔 미군으로부터 핵무기를 인계 받아 자국 전폭기 등에 싣고 핵보복 공격을 한다는 뜻이다.

이 경우에도 핵공유 체제에서도 최종적으로 핵무기 사용의 결심은 미국 대통령이 한다. 다만 핵투발 수단(전폭기 등)은 동맹국이 갖기 때문에 사실상 핵공격 결정 과정에서 일반적인 전술핵 배치보다 동맹국이 적극적으로 의사를 반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핵 사용장치의 열쇠를 미국과 동맹국이 나눠 갖는다는 뜻에서 ‘이중열쇠(Dual Key)’체계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미 공군 전략폭격기 B-52 스트라토포트리스(맨앞)가 지난 2016년 6월 9일 발틱해 상공에서 미국, 독일, 스웨덴, 폴란드 전투기들과 편대비행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미 공군


최근 국내 정치권이나 일부 미디어 등에서 제기하고 있는 핵무장론, 전술핵배치론, 핵공유론, 확장억제론 중에선 위와 같은 정확한 개념을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혼용하는 경우가 많아 국방당국자들은 해명을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특히 집권여당이나 일부 정부 당국자들이 스스로 제대로 기본적 개념조차 알지 못하고 마구 잡이로 대북 핵억제 시나리오를 ‘카더라’식으로 쏟아내면 외교적 대참사를 가져올 수 있다. 자칫 하면 미국 등 조야에서 한국에 대한 불신을 가져와 한미동맹의 균열은 물론이고 확장억제공약 발전에도 먹구름이 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군 육군의 어네스트존(MGR-1B) 미사일이 1973년 국군의날 기념 퍼레이드에서 발사차량에 실려 이동하고 있다. 어네스트존 계열의 지대지 미사일은 전술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것으로알려져 있다. . 사진출처=위키완드


◆한반도 핵우산의 시발점

한국은 미국 핵우산 공약의 대표적인 실천 사례로 꼽혀왔다. 한국전쟁 휴전 후에도 북한의 대남 도발이 이어지자 당시 이승만 정부는 미국에 더 강력한 안보지원을 요청했다. 더 많은 미군 병력과 장비를 한국에 주둔시키고 우리 국군의 무기 및 군수용품들을 확충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으로선 과도한 해외 병력 배치와 장비 지원에 재정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마침 일본 내에서 중국, 소련 등의 위협에 대응해 재무장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주일미군 증강 압박까지 동반됐던 상황이었다. 당시 해외주둔 병력 감축을 고민하던 미국 아이젠하워 정권을 고민에 빠졌다. 그런 와중에 주한미군 전술핵 배치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이는 미국이 재정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8년 9월 26일 당시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한 첫 국산 지대지탄도 미사일 '백곰'의 시험발사를 지켜보고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주한미군 감축 및 철수 우려에 대응해 국산 무기 개발을 가속화했다. 사진제공=ADD


주한미군은 1958년 1월부터 1991년 12월까지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서 운용했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한 것은 1958년부터라고 볼 수 있다. 당시 한국에 배치된 미국의 전술핵 무기는 주로 폭격기에서 투발하는 ‘B-61’계열의 핵폭탄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유사시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어네스트존’계열의 지대지 미사일도 주한미군 등에 배치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미국이 핵우산 제공을 구속력 있는 외교문서로 명문화한 것은 1978년부터다. 그해 양국 국방장관들의 연례회의체인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제 11차 회의에서 양국 국방장관이 ‘핵우산 제공(nuclear umbrella provision)’을 공동성명에 담아 발표한 것이다. 이후 SCM성명에는 계속 ‘핵우산 제공’ 문구가 들어갔다. 그 배경에 대해선 학계에서 여러 해석이 있다. 특히 1970년대 미국 닉슨 정부가 주한미군을 감축한 데 이어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도 주한미군 철수 압박 움직임을 보이면서 한국의 불안감이 커지고 독자핵개발 가능성이 옅보이자 이를 달래기 위한 측면이었다고 해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1991년 6월 31일 당시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 Ⅰ)'에 서명하고 있다.


◆냉전붕괴가 가져온 핵우산의 새 면모...‘확장억제’공약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공약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 사이에 전환점을 맞이했다.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옛 냉전체제가 종식된 것이다. 구소련 해체 직전 미국과 소련은 핵군축을 본격화했다. 당시 소련의 개혁개방을 추진했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평화의지가 적극 반영된 것이다. 이에 따라 미소는 1987년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맺었다. 1991년에는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 Ⅰ)을 체결했다.

이 같은 흐름에 속에 한국에 배치됐던 미국의 전술핵무기도 1992년 전면 철수됐다. 그런데 북한이 뒤통수를 쳤다. 1985년 NPT에 가입했던 북한이 주한미군 전술핵무기 철수 이듬해인 1993년 NPT를 탈퇴하며 사실상 핵무기 개발 위협을 노골화한 것이다. 구소련 해체에 따른 옛공산권의 몰락에 위기감을 느낀 북한의 몸부림이었다.

유엔 안보리가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대북제재 결의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북한의 NPT탈퇴 사태는 이듬해 미국의 북핵시설 폭격계획 논란으로 번졌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당시 김영삼(YS)정부가 미국을 만류했다. 북한과 미국과 협상을 거쳐 1994년 제네바합의에 서명했다. 해당 합의에 따라 북한이 핵사찰, 핵동결, NPT체제 복귀 등을 수용하면서 잠시 위기는 표면적으로 잠시 진정되는 듯 했다.

그러나 한국 내에선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다. 마침 확장억제라는 용어가 대두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 전략가들 사이에서 확장억제라는 개념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다만 당시에는 단순히 학술적 차원의 논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것이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강행 속에 한미간 안보공약으로 공식화됐다. 한미 국방장관들이 2006년 12월 제 38차 SCM에서 ‘확장억제’공약을 명문화해 발표한 것이다. 당시 SCM 공동성명은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통산 확장억제 지속을 포함하여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미국의 한국에 대한 굳건한 공약과 신속한 지원을 보장하였다”고 명문화했다.



윤관웅(왼쪽) 국방장관이 지난 2006년 10월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과 미국 워싱턴에서 제 38차 한미안보협의회(SCM)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해당 SCM에서 처음으로 ‘확장억제’ 용어가 한미간 공동성명서에 명문화됐다. AP-연합뉴스


◆도전 속에 진화한 확장억제

한미가 확장억제공약을 공개 천명했음에도 북한은 핵위협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단행한 것이다. 이에 한미는 대북억제력을 발휘하기 위해 확장억제공약의 신뢰성을 한층 높이는 쪽으로 대응했다. 한미 정상이 그해 6월 양자간 정상회담에서 사상 처음으로 공동발표문에 핵우산을 명문화한 것이다. 두 정상은 당시 발표문(공식 명칭 ‘한미동맹 미래비전’)을 통해 “우리는 양국의 안보이익을 유지하는 동맹능력이 뒷받침하는 강력한 방위태세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며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억제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공약은 이와 같은 보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같은 해 12월 한미는 제 41차 SCM을 통해 확장억제의 수단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성명은 미국 제공하는 확장억제수단에 대해 핵우산 뿐 아니라 재래식 타격전력, 미사일 방어 능력을 포함하는 모든 범주의 군사능력 등으로 규정했다.

한미가 2006년 SCM에서 확장억제 공약을 첫 명시했을 때만해도 미국은 확장억제가 기존의 핵우산과 다르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이로 인해 확장억제의 개념을 놓고 핵우산보다 구체적인 방안을 추진하려고 했던 우리 국방부와 미묘한 입장차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데 북한의 후속 핵실험으로 확장억제 공약마저 도전 받자 한미가 2009년 ‘재래식 타격전력’과 ‘미사일 방어’를 비롯한 ‘모든 범주의 군사능력 등’으로 개념을 보강해 발전시킨 것이다.

미 공군의 스텔스 폭격기인 'B-2스피릿'(가운데)가 지난 2022년 3월 23일 F-35A전투기, EF-18그라울러 전자전기 등의 호위를 받으며 인도태평양 지역 일대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B-2스피릿은 유사시 한반도 주변에 은밀히 전개돼 핵무기 등으로 북한 수뇌부 등 전략시설을 타격할 미국의 전략자산으로 꼽힌다. 사진제공=미 공군


◆확장억제는 사실상 ‘미군 자동개입’ 약속(?)

확장억제의 개념을 이해하려면 먼저 국방용어로서 ‘억제(deterrence)’의 뜻을 이해해야 한다. 억제란 쉽게 말해 적이 아군을 공격할 해봤자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것을 깨닫게 해 공격의지를 단념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 한국에 대해 남침을 해봤자 한미연합의 첨단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 반격을 받아 멸망하게 된다고 여기게 해 도발을 시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미국의 핵우산도 그런 차원에서 공약됐다.

미국의 억제전략은 기본적으로 ‘본토 억제’다. 즉 자국본토에 대한 적의 공격의지를 단념시키는 것이다. 그 주요 수단은 핵무기와 재래식전력 등이다. 그리고 본토 억제의 공간적 범위를 확대시켜 동맹국들에게 약속한 안보공약이 ‘확장 억제’다. 쉽게 말해, 동맹국에게 ‘당신의 영토가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미국 본토가 공격받는 것과 같이 간주해 핵, 재래식 무기 등 가용한 전력을 제공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한미 연합 해상훈련에 참가한 한미 해군 함정들이 지난 9월 29일 동해상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은 미 원자력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CVN) 항해 모습. 사진제공=해군


이를 놓고 사실상 유사시 미군이 한반도에 자동개입하는 것을 선언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보는 해석도 군 및 학계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우리 군의 한 관계자는 “기존의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자동개입 조항이 없다”며 “해당 조약은 무력공격 등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의 헌법상 수속에 따라 행동’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물론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어서 북한의 공격을 받으면 사실상 미군이 자동개입하는 ‘인계철선’역할을 해주고 있는데 그마저도 수도권 이남으로 주둔지가 점차 철수해 북한이 수도권 이북만 국지적으로 도발해 기습점거할 빌미를 주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확장억제 공약을 강화해 ‘모든 범주의 가용한 전력 제공’을 약속했다는 것은 미국이 사실상 어떤 상황에서도 자동개입해 본토가 공격받은 것처럼 안보를 지켜주겠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여전히 보는 사람의 관점이나, 상황에 따라 해석 차이의 여지는 있다. 따라서 한미가 한층 더 ‘자동개입’ 수준에 가깝게 구속력 있는 문서로 화장억제 공약을 보강해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2일 한반도 비핵화 파기 등을 언급해 파장이 커진 가운데 이튿날 오후 경북 포항시청을 찾아 태풍 힌남노관련 지원책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여당의 ‘독자 핵무장론’...한미균열 노린 북한 전략에 역이용될 우려

한미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지속되자 국내에선 근래에 다시 확장억제공약의 신뢰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전술핵 재배치를 하거나 핵공유를 추진하고,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독자 핵무장도 각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표면화됐다.

이번 논란의 단초가 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0월 11일 오전 출근길 도어스테핑 발언이었다. 북한 도발과 관련해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할 문제가 아니고 우리나라와 미국 조야의 여러 의견을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고 답변한 것이다. 이어서 12일에는 국회 부의장까지 역임했던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페이스북을 통해 북한이 7차 핵실험 강행시 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역시 파기돼야 한다며 “이제 결단의 순간이 왔다”고 발해 파장이 한층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대통령 참모들까지 의견이 분분하며 ‘다양한 옵션’을 검토 중이라는 뉘앙스의 발언들을 흘리자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핵재배치 추진’, ‘핵공유 추진’, ‘독자 핵무장론’ 등의 보도가 중구난방 식으로 쇄도했다.

이에 한국이 NPT를 탈퇴해 독자핵무장까지 고려하는 게 아니는 식으로 ‘카더라’식 논란이 국내외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미동맹은 기본적으로 NPT체제를 인정하고 미국 핵우산 등을 제공받는 안보동맹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여당의 수장이 핵무장 등으로 오해될 수 있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한미동맹에 균열을 자초하는 것이라는 게 이들의 진단이다. 군의 한 장성은 “NPT는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안보질서의 핵심”이라며 “혹여나 우리 정부나 여당이 이를 부정하는 듯 뉘앙스를 주면 북한이 노리는 한미동맹 균열을 우리 스스로 자초하는 꼴이 된다”고 지적했다.

신범철 국방부차관이 지난 9월 15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앤드루스 합동기지를 방문하여 미측 확정억제 담당 인사들과 함께 전술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B-52’ 전략폭격기를 둘러보고 있다. (왼쪽 5번째부터) 비핀 나랑 우주정책 수석부차관보, 하대봉 방위정책관, 신범철 국방부차관, 싯다르트 모한다스 동아시아 부차관보, 리처드 존슨 핵?WMD 대응 부차관보. 사진제공=국방부


신범철 국방부차관(맨 왼쪽)이 15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앤드루스 합동기지를 방문하여 B-52 전략폭격기의 핵탄두 탑재 부분을 확인하는 모습. 사진제공=국방부


◆뒤늦게 진화 나선 尹정부...확장억제력 신속전개에 방점

논란이 확산되자 대통령실과 정부는 ‘NPT체제 유지’입장을 재확인하면서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그럼에도 여전히 논란이 확산되지 신범철 국방부 차관이 총대를 메고 교통정리에 나섰다. 신 차관은 지난 13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갖고 “전술핵을 재배치하기보다는 우리가 현재 가용한 미국의 전략자산을 적시에 조율된 방식으로 한반도에 전개함으로써 북한을 억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반도에서 핵 공유가 필요한가, 아직은 저희가 그런 논의를 하지는 않고 있다"며 "필요한 시기에 미국의 어떤 전략자산이 올 것인가, 어떻게 보여줌으로써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고 상황을 관리할 것인가, 그런 수준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 차관의 발언과 윤 대통령의 NPT고수 입장천명 등을 살펴볼 때 현 정부가 독자 핵무장을 추진하거나 주한미군의 전술핵 재배치를 추진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대신 기존 확장억제체계를 강화해 북한 대남핵공격 등과 같은 유사시 미국의 핵전략자산(전략폭격기, 핵추진항공모함, 핵잠수함) 등이 보다 적시에 한반도 및 주변에 전개될 수 있도록 실효성을 높이고, 전개방식 등에 대해 우리 측의 의사가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추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핵추진항모나 핵잠수함 등을 한반도 주변 공해에 순환배치하거나 상시배치하는 방안 등에 대해서도 한미간 논의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양국이 지난 9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제3차 한미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보니 젠킨스 미국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 차관, 신범철 국방부 차관, 조현동 외교부 1차관, 콜린 칼 미국 국방부 정책차관. /사진제공=국방부


윤석열 정부는 중장기적으로는 한미간 확장억제공약을 향후 핵공유 방식에 가깝게 발전시키려는 것 보인다. 신 차관도 지난 13일 인터뷰에서 미국 전략폭격기나 핵 추진 항공모함, 핵 추진 잠수함 등을 한반도 주변에 상시 배치하자는 일각의 의견에 대해 ”그 정도면 핵 공유라고 부르고 싶다"고 평가했다. 신 차관은 다만 “(현재 논의가)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다”라고 밝히면서도 “한미 간의 확장억제 협력이 여러 가지 옵션들이 다 검토되고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실제로 고위당국자에 따르면 한미가 최근 확장억제정책에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협의를 개시해 진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는 현재 확장억제 개선을 위해 총 6개 범주(정보공유, 공동기획, 위기협의, 연합연습, 전략자산전개 등 포함)로 진행 중인데 이는 사실상 나토식 핵공유와 흡사한 핵정책 공동수립체계를 만드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특히 나토 회원국들이 운용하는 핵기획그룹(NPG)을 벤치마킹한 아이디어로 보인다. NPG는 미국과 유럽 나토 회원국 국방장관들이 핵공유와 관련해 핵무기 정책 구상, 배치, 운용 등을 협의를 하는 핵심 기구다.

2018년 5월 24일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작업을 하는 장면. 이날 현장의 관리 지휘소시설 7개동이 폭파됐다/사진공동취재단


◆ ‘이스라엘식 핵무장론’ 실현 가능성은

확장억제 업그레이드에 방점을 둔 윤석열 정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등에선 여전히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강경론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실현가능성을 감안하기보다는 단순히 여론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는 게 정치평론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보수 지지층도, 진보 지지층도 대체적으로 핵보유국에 대한 ‘묵시적 로망’이 있기 때문에 이른 노린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NPT체제를 위반해 독자핵개발을 추진했을 때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는 북한의 처참한 경제현실과 외교적 고립을 보면 알 수 있다. 북한은 당초 1985년 NPT에 가입으나 그 이전인 1960년대부터 비밀리에 옛 소련 등의 기술지원을 받으며 핵개발을 해왔다. 하지만 NPT가입 후에도 핵개발을 하는 것이 폭로돼 1차 핵위기가 발생하자 2003년 NPT를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그 결과 유엔 안보리 등으로부터 NPT 위반에 따른 제제를 받았다. 이후 북미 제네바합의로 NPT 복귀에 합의했지만 다시 핵실험을 강행해 지속적으로 국제적 제재를 받고 있다. 북한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지만 NPT체제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불량국가로 낙인 찍혀 있다.

파키스탄의 지대지 탄도미사일 '샤힌 III'가 지난 2015년 12월 11일 시험 발사되는 모습. 사진출처=ISPR


일각에선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의 사례를 들어 대한민국의 독자적인 핵무기보유 가능성을 부각시키곤 한다. 이들 국가도 독자핵개발로 한동안 제재를 받았으나 결국 국제사회로부터 암묵적으로 핵무장국가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는 결정적 허점이 있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모두 미국의 동맹국이 아니다. 미국은 자국을 포함해 파이브아이즈라 불리는 옛 영국연방국가(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를 최우선의 1등급 동맹국으로 관리하고 있고, 그 다음으로 한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을 매우 중요한 속칭 ‘1.5 등급 동맹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미국은 1.5등급 동맹국에 대해선 미국이 사실상 안보-경제 공동운명체라고 할 정도로 밀접한 협력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 스페인, 스웨덴 등 유럽 선진국들조차도 사실상 미국의 ‘2등급 동맹’으로 평가되는데 그만큼 1.5등급에 포함된다는 것은 극소수의 국가만 가진 특권이 된다.

반면 이스라엘, 인도는 동맹이 아닌 우방국이다. 그나마 인도는 사실상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며 중립노선을 걷고 있어 진정한 우방인지 여부를 의심받고 있다. 파키스탄은 한때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나 독자 핵개발 이후 멀어져 현재는 파트너 국가 정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파키스탄은 독자핵개발에 따른 제재로 경제가 심각하게 붕괴됐다.

당장 미국발 금리인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로 인한 국제원자재 대란에도 경제가 흔들거리는 대한민국의 소규모 개방경제를 감안할 때 북한과의 결전을 각오해야 하는 최악의 자위권적 상황이 아니라면 독자핵개발 추진은 스스로 패망을 불러오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민병권 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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