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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지표만 믿다 타이밍 놓쳐…"시장 원하는 해법 적시에 내놔야"

■令 안서는 경제팀…자금시장 대책에도 시장 불신

긴급 대책 불구 3개월물 CP금리 되레 0.12%P↑

환율·국채금리 등 당국 입김보다 美 상황에 좌우

세제도 우왕좌왕…협상력 부재로 불확실성만 키워

용산 대통령실 청사 전경. 연합뉴스




금융시장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 경제팀 목소리에 영(令)이 서지 않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단기 시장 변동에 대응해 ‘소방수’로 나서야 할 정부의 시장 개입이 최근 들어 거의 효과를 내지 못하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어서다. 여기에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마저 사안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듯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24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와 금융투자협회 등에 따르면 이날 91일물 기업어음(CP)금리는 4.37%로 전 거래일 대비 0.12%포인트 상승했다. 정부가 나서 회사채 및 CP 시장에 50조 원 이상의 자금을 쏟아붓기로 했는데도 오히려 금리가 뛰어 단기 자금을 융통하기 더 어려워진 이상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CP와 달리 이날 국고채금리는 대체로 하락했으나 23일 발표된 ‘채권시장 안정 대책’보다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 기대감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한마디로 국내 금융시장에서 정부의 존재감이 예전 같지 않다는 뜻이다.

이에 앞서 금융위원회는 20일 “채안펀드를 조만간 가동하겠다”며 시장 개입을 예고했지만 이튿날인 21일 CP금리가 4.250%까지 뛰며 2009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하는 ‘역주행’이 벌어지기도 했다.



환율 시장에서는 정부 개입의 약발이 통하지 않은 지 이미 오래다. 실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5일 오전 “환율 불안이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 넋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며 작심 구두 개입에 나섰으나 막상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원 80전 오른 달러당 1393원 70전에 마감했다. 이마저도 외환 당국의 일명 ‘도시락 폭탄’ 달러 매도가 상승세를 누른 데 따른 결과였다.

이어 9월 16일에는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나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통화스와프를 포함한) 외환 협력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밝혀 순식간에 원·달러 환율을 전일 대비 5원 70전 낮은 1388원으로 끌어내렸으나 막상 회담에서는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해 도리어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6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우리 입장에서 통화스와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소신 발언을 내놓았다가 시장을 자극해 발언 당일에만 원·달러 환율이 22원 뛰는(달러당 1431원 30전 마감) 역효과를 내기도 했다.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은 “우리 경제팀의 실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지금 상황에서는 매크로한 거시 지표를 따질 때가 아니라 일일 자금 흐름과 같은 디테일한 수치를 잘 챙겨야 최적 해법을 내놓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외환보유액 등 거시건전성 지표만 믿지 말고 시장이 원하는 해법을 적시에 내놓을 수 있어야 ‘말발’이 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단기 시장에 대한 실효성 떨어지는 대응에 더해 정부가 거시경제정책 전반에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정·세제 등 경제팀이 주관하는 분야에서도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 정부 정책에 영(令)이 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사례가 종합부동산세 3억 원 특별공제 도입 무산이다. 당정은 거대 야당의 반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정부가 난맥상을 돌파하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세제 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만 커지는 결과를 낳게 됐다. 기재부 세제실장 출신의 전직 관료는 “정부가 세법 개정에 총력전을 한다는 느낌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며 “이렇게 되면 법인세 인하도 어렵고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만 커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경제정책을 두고 우왕좌왕하는 것도 문제다. 가령 여당인 국민의힘은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노인 기초연금 40만 원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오다 이달 들어 갑자기 ‘단계적 추진’으로 입장을 바꿨다. 최근 지지율이 급락하자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은 연간 1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내년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한 지역화폐 예산도 야당과 협상 과정에서 결국에는 되살아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가 표면적으로 재정건전성 사수를 외치면서도 물밑에서는 ‘포퓰리즘’에 엉뚱한 박자를 맞추고 있는 셈이다. 한은 역시 2번의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을 실시했으면서도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재가동 요구 등에 대해 “시장 상황을 보면서 논의하겠다”고 밝히는 등 시장에 일관된 메시지를 던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 한 시중은행의 임원은 “정부의 엇박자·뒷북 대응이 계속해서 이어질 경우 정부 신뢰가 무너져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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