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보호를 위한 암호화폐 업계의 자율규제가 본격 시행됐다. 업계 내 민간사업자들이 상호 협력하기 위해 업무협약(MOU)을 맺고 법정 기구가 아닌 협의체 형태로 자율규제를 시행하는 글로벌 첫 사례다. 전문가들은 공동 협의체가 더 많은 권한을 부여 받고 시장과 투자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이해 상충 문제 해소, 협의체 내 역할·권한 구체화 등의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1일 암호화폐 업계에 따르면 5대 원화 마켓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로 구성된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는 지난달부터 ‘거래 지원(상장) 심사 공통 가이드라인’을 각 사에 도입했다. 거래소가 암호화폐 거래 지원 여부를 결정할 때 자사의 기준과 정책을 따르되 공통 가이드라인을 블랙리스트 방식으로 적용하는 식이다. ‘적어도 이런 암호화폐의 상장은 안 된다’는 기준이 만들어진 셈이다. 지난달 27일 고팍스에 상장된 글로벌디지털콘텐츠(GDC)와 20일부터 빗썸이 거래를 지원한 체인(XCN), 업비트가 19일 상장한 앱토스(APT) 등은 모두 DAXA의 공통 가이드라인을 적용 받았다. 특히 APT는 지금껏 국내외 거래소에서 상장된 적이 없는 ‘단독 상장’ 암호화폐인 만큼 업비트는 공지에서 “타 거래소에서의 거래가가 없어 시세 산정이 어렵다”는 문구를 붉은 글씨로 강조하기도 했다.
DAXA가 마련한 자율 개선안에는 △거래 지원 심사에 외부 전문가 최소 2명 또는 최소 30% 이상 포함 △암호화폐경보제 도입 △신규 광고 및 이벤트 진행 시 경고 문구 삽입 △암호화폐 유형별 위험성 지표 및 모니터링 방식 마련 등도 담았다. 경고 문구는 즉시 시행됐고 경보제 도입 및 위험성 지표 적용은 향후 협의를 통해 구체화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위험성 지표가 공동 적용되면 문제 상황이 발생할 시 대응이 빨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고팍스를 제외한 DAXA 소속 4개 거래소는 지난달 27일 오후 위메이드가 발행한 암호화폐 ‘위믹스(WEMIX)’를 일제히 유의종목으로 지정했다. 4대 거래소는 “DAXA 회원사에 제출된 유통량 계획 정보와 실제 유통량에 차이가 있는 등 정보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지정 이유를 밝혔다.
제도보다 앞선 암호화폐 사업자들의 자율규제는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스위스와 일본에도 각각 스위스자금세탁방지기구(VQF SRO), 암호자산거래업협회(JVCEA) 등 자율규제기관(SRO)이 있지만 이는 모두 각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권한을 부여 받은 법정 기구다. 법적 기반 없이 ‘협의체’ 형태로 거래소들이 자율규제에 나선 경우는 없다.
이외에도 각 거래소는 투자자보호센터·자금세탁방지(AML)센터 등을 설립하고 투자자 보호책을 강화화고 있다. 지난해 10월 AML센터를 설립한 코인원은 9월 말 12명이던 AML 국제 공인 자격증 보유 인력을 현재 17명까지 늘리며 8월 한 달간 총 3억 원 규모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기도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거래소들의 자율규제 협의체가 향후 법정 공식 협회의 전신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가입사 확대, 이해 상충 문제 해결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DAXA에 가입한 5개사 외에도 가상자산사업자는 31곳이 더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코인 마켓 거래소의 거래량은 원화 거래소보다 크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해 상충 문제가 해결돼야만 가상자산거래업자가 신뢰성 있는 문지기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고 정부로부터 높은 수준의 자율규제 권한을 부여 받을 수 있다”며 “가상자산거래업자의 구조적 이해 상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탁결제와 매매의 분리, 시장 조성 불허용 등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짚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