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각종 칼럼을 통해 블라인드 채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최근 정부는 연구기관부터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채용 방식 때문에 연구기관들은 연구원 선발 시 출신 학교는 물론이고 해외 연구기관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추천서를 받지 못했다. 후보자 논문과 관련해 질문이 있는 경우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이름까지 삭제해 제출하도록 함으로써 연구자 배경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
비주류 경제학에 따르면 인간은 정보 제약으로 인해 제한된 합리성만 갖는다. 특히 거래 일방은 정보가 풍부하나 상대방은 정보가 부족한 정보 비대칭성 상황에서는 정보 비대칭을 악용하는 기회주의적 행동이 만연한다. 중고차나 골동품 등의 일회성 거래에서 이러한 행동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 비대칭과 기회주의는 지속적인 서비스 제공을 내용으로 하는 중장기 계약에서는 극대화될 수 있다. 현재 시점에서 미래 서비스 관련 계약의 합리적 체결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는 고용계약이다. 고용계약에서는 정보 비대칭이 극대화된다. 고용인은 외부에 드러난 정보는 파악 가능해도 성격이나 자세·습관 등 피고용인의 마음에 내재한 정보는 알기 어렵다. 계약 당시도 문제지만 고용 이후도 문제다. 피고용인이 자신의 행동에 관한 고용인의 정보 부족을 악용해 고용인에게는 손실이 되지만 피고용인에게는 이익이 되는 행동을 취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 계약 당시 이를 방지하는 내용을 담기는 쉽지 않다.
기업에서는 관리 조직이나 규칙 혹은 유인 체제를 만들어 피고용인의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기도 한다. 각종 수당의 조건적 특성, 정보 비대칭성의 역방향에서 설계되는 계층 등이 적절한 예일 것이다. 특히 전문직·연구직 등 지식 서비스 제공을 내용으로 하는 고용계약에서는 피고용인의 지식이나 연구 역량은 물론 고용 이후 행동을 사전에 알기 쉽지 않다. 계약 시점 피고용인에 관한 정확한 정보야말로 최선의 계약을 이루는 핵심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2017년 도입된 블라인드 채용 방식은 정보 비대칭을 더 심화시키는 엉뚱한 제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 기능 중 하나는 정보 비대칭성을 완화해주는 일이다. 의료 면허 등 국가 자격증이나 인증은 정보 비대칭을 완화함으로써 거래를 촉진하는 제도 가운데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블라인드 채용, 특히 출신 대학과 학점을 공개하지 않도록 한 것은 정보 비대칭성 해소라는 국가 기능을 포기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연구기관 블라인드 채용 방식 폐지는 늦었지만 다행인 일이다. 앞으로 블라인드 채용 방식이 우리 사회 전반에서 사라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정부는 정보 비대칭 완화 노력을 강화해 경제 각 부문에서 시장 기능이 원활히 작동되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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