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 사태’의 여진이 FTX 파산 신청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FTX 파산이 글로벌 암호화폐 대부 업계로 확산되는 가운데 금융 당국 및 전문가들은 국내에는 특정금융정보법이 있어 ‘한국판 FTX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소형 코인마켓거래소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검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17일 암호화폐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앞서 16일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등 국내 5대 원화 거래소 대표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서 대표자들은 “국내의 경우 특금법에 따라 고객 예치금이 실명 계정 발급 은행에서 엄격히 구분돼 관리되고 사업자의 암호화폐 발행이 제한돼 FTX와 같은 사건이 국내에서 발생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암호화폐거래소들이 자기 발행 코인에 민감한 것은 루나 사태에 이어 이달 11일(현지 시간) 미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한 FTX도 자기 발행 코인 ‘FTT’를 악용하다가 유동성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FTX는 자기 발행 코인인 FTT로 관계사가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이러한 거래에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자 고객 자산에까지 손을 댔다.
일단 국내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법적으로 거래소가 코인을 발행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금법 시행령 제10조의20 제1·2·5호에 따라 거래 내역을 고객별로 분리하고 예치금도 고유 재산과 구분해야 한다. 또 특수 관계가 있는 암호화폐 거래를 지원할 수 없다.
하지만 FIU에 신고된 국내 암호화폐거래소들이 모두 금융 당국의 엄격한 관리 감독 아래에 있는 건 아니었다. 자기 발행 코인을 상장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플랫타익스체인지(플랫타EX)를 비롯해 총 31개 코인마켓거래소 중 현재까지 FIU의 검사를 받은 곳은 한 곳도 없다. 은행과 실명 계좌 발급 계약을 맺은 5개 원화 거래소만 검사를 마쳤다. 코인마켓거래소는 한마디로 검사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금융 당국은 거래소를 검사할 만한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FIU 내 가상자산검사과 인원은 6명에 불과했다. FIU의 한 관계자는 “인력이 부족해 코인마켓거래소까지는 아직 검사를 나가지 못했다”며 “내년 검사 계획은 미정”이라고 말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14일 국민의힘이 개최한 제4차 민·당·정 디지털자산 시장 간담회에서 “디지털자산 관련법이 통과돼도 법을 집행할 수 있는 충분한 인력과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집행이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금융 당국의 검사가 코인마켓거래소 등에 미치지 못하는 동안 FTX 파산의 불똥은 국내 암호화폐 시장으로도 번지고 있다. 암호화폐거래소 고팍스는 이날 “자체 예치 서비스인 ‘고파이’ 자유형 상품의 원금 및 이자 지급이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고파이 협력사인 미 암호화폐 대출 업체 ‘제네시스글로벌캐피털(제네시스트레이딩)’이 신규 대출과 상환을 잠정 중단했다.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도 FTX 파산의 후폭풍에 휩쓸리고 있다. 제네시스글로벌캐피털은 이날 FTX 사태의 여파로 비정상적 인출 요청이 유동성을 초과했다며 신규 대출·상환을 일시 중지하기로 했다. FTX가 한때 자금을 지원했던 암호화폐 대부 업체 ‘블록파이’ 역시 유동성 위기로 인해 현재 고객의 자금 인출을 중단한 상태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은 FTX에 물린 2억 7500만 달러(약 3685억 원)를 상각했다. 고팍스 측은 “제네시스글로벌캐피털의 발표가 있기 전 모든 자산을 상환 요청했지만 상환은 실시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상환 지연이 있더라도 고객이 고파이 예치 자산을 상환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14일 간담회에서 “FTX 사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이용자 자산 보호 업무와 자기 발행 코인에 대한 불공정거래 규제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용태 금융감독원 디지털금융혁신국장도 “자기 발행 코인 및 특수관계자 간 불투명한 재무 관계 위험성을 FTX 사태를 통해 체감하게 됐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 금융 당국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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