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바이오 중심 국가 도약’을 과제로 삼아 기대를 걸었지만 크게 실망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육성을 외치고 뒤에서는 가격을 후려치려 합니다. 약가 인하는 신약 개발에 힘쓰는 K바이오의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정부가 약가 산정 시 참조하는 국가에 호주와 캐나다를 추가하기로 하자 제약·바이오 업계가 “약가 인하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국내와 달리 제약산업 기반이 열악해 가장 저렴한 약만 수입해 보험을 적용하는 호주 같은 국가의 약가를 참고하겠다는 의도가 의심된다는 것이다. 국산 신약을 포함해 약가가 일괄 인하된다면 신약 개발 투자를 위한 재원 마련이 어려워져 개발 의지가 꺾일 수 밖에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다만 정부는 이같은 제약·바이오 업계의 반응에 대해 “약가 참조국 확대는 약가 인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투명성·명확성·타당성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1일 업계와 정부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달 의약품 급여 평가에 활용되는 약가 참조국에 호주·캐나다를 포함하는 내용의 ‘약제의 요양급여대상여부 등 평가기준 및 절차에 대한 규정 개정안’을 사전 예고했다. 현재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일본 등 7개국의 약가를 참조하고 있는데서 호주와 캐나다를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심평원은 11일까지 의견을 수렴한 뒤 개정안을 내년 1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이런 움직임에 크게 실망하며 실제 개정 여부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호주에서 유통되고 있는 일부 복제약(제네릭)의 경우 가격이 국내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경우도 있을 정도로 저렴하기 때문에 결국 약가 인하를 염두에 둔 개정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조치의 가장 큰 문제는 약가 참조국에 호주를 포함시키는 것”이라며 “호주는 제일 싼 약만 보험 적용을 하고 나머지는 환자 본인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국 제약 산업이라는 게 없고 무조건 싼 약만 수입해서 쓰는데, 그런 나라와 제약 산업을 통해 수출도 하고 고용도 증대하려 하는 우리나라 약가를 비교한다는 거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글로벌 빅파마들과 경쟁 속에서 신약 개발 역량이 부족한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약가를 낮춘다면 어떤 기업이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을 들여 신약을 개발하려 하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업계는 참조국 확대가 영향을 끼칠 범위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통상 참조국 약가는 경제성 평가 자료 제출 생략 가능 신약의 급여 적정성을 평가할 때 활용된다. 하지만 만약 정부가 이미 보험에 등재된 약제에 대한 재평가를 할 때도 참조국 약가를 활용한다면 약가 일괄 인하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내년 경영환경이 그 어느 때 보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약가를 인하한다면 수익성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그동안의 정부 정책 진행 과정을 볼 때 이번 개정안은 조만간 약가를 후려치겠다는 얘기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어 업계 전체가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이같은 업계 반응에 대해 “약가 인하를 위한 개정이 아니다”고 선을 긋고 있다. 심평원 관계자는 “현재의 외국 약가 참조 산식은 30년 전에 만들어져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어있지 않다”며 “근거가 미흡하고 산식이 불합리한 측면이 있어 업계에서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 개정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업계의 우려처럼 약가 인하를 위한 포석이 아니다”라며 “11일까지 의견을 듣는 기간인 만큼 업계에서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주장을 제시하면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약가 인하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당은 혁신 신약 약가 우대 입법을 추진키로 했다.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혁신형 제약사가 제조한 의약품에 대한 우대 제공 조항을 강행 규정으로 바꾸고, 보건복지부 소속 제약 산업 육성·지원위원회를 총리 직속 제약 바이오 혁신위로 격상하는 내용의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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