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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서울옥션 인수 대신 경매시장 직진출 검토

서울옥션 지분 투자 이어 인수 협상 진행

주당인수가 놓고 이견 못 좁혀 장기 표류

서울옥션 특별세무조사 사실상 논의 끊겨

정관변경·내부조직 등 하드웨어 이미 완료

갤러리 네트워크·백화점 채널 업력 활용해

미술·주얼리·와인 등 옥션 영역 확장 전망

신세계백화점(왼쪽)과 서울옥션은 지난해부터 신세계의 서울옥션 경영권 인수와 관련한 협상을 진행해 왔다./사진 제공=신세계백화점, 서울옥션




아트 비즈니스 확대 차원에서 서울옥션(063170) 인수를 추진했던 신세계(004170)백화점이 최근 전략을 바꿔 경매 시장 직진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품 전시·판매에서 경매·중개까지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국내 최대 미술품 경매사에 욕심을 냈지만, 인수 금액을 둘러싼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자체 전담 부서를 통한 추진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전해졌다. 신세계는 미술 외에도 백화점 채널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주얼리·패션·와인 등 명품으로 옥션 취급 품목을 넓힐 전망이다.

8일 유통 및 IB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이어오던 신세계와 서울옥션 간의 인수 협상이 사실상 중단됐다. 양측의 협상이 공식 종료되지는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경영권 인수가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 부문 총괄 사장/사진 제공=신세계


신세계는 2021년 12월 정유경 백화점 부문 총괄 사장의 주도로 서울옥션 주식 85만 6767주(4.82%)를 약 280억 원에 확보했다. 그해 사업 목적에 ‘미술품 전시·판매·중개업’을 추가하는 정관 변경을 완료하고 이듬해인 2022년에는 ‘인터넷 경매 및 상품중개업’을 추가하며 관련 사업에 의지를 보인 만큼 업계에서는 신세계가 미술품 시장 진출을 위해 추가로 서울옥션 지분을 취득하거나 장기적으로는 경영권을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실제로 양측은 물밑에서 이 같은 협상을 이어오다 공시로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밝혔고, 신세계는 이후 미술 전문가를 통해 서울옥션이 보유한 미술품을 실사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특히 그룹 재무 담당이나 인수 실무진이 서울옥션이 요구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에 부담을 보인 데 반해 정 총괄 사장은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해 거래가 성사된 인수 사례를 언급해가며 강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실무선에서의 ‘인수가’ 이몽(異夢)으로 협상이 표류했고, 그 사이 시장 상황도 급변했다. 글로벌 유동성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미술품 거래 시장도 위축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미술품 경매 판매액은 2335억 원으로 2021년 3384억 원 대비 30.9% 감소했다. 그 과정에서 3만~4만 원대에서 논의되던 주당 인수가와 실제 주가 간 괴리도 더욱 커졌다. 지난해 1월 3만 2850원으로 출발한 서울옥션 주가는 올 1월 6일 종가 기준 1만 8100원까지 떨어졌다.

양측의 협상은 서울옥션이 지난해 12월부터 관세청의 특별 세무조사를 받게 되면서 사실상 끊긴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통상 관세청은 서울옥션과 같은 경매사가 미술품을 수입할 때 부가가치세 면세 규정 위반을 조사한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창작품으로 분류되는 예술품·수집품·골동품을 수입할 때는 부가가치세를 면제하지만, 같은 예술품이어도 판화같이 대량 생산하거나 예술품으로 수입한 후 일상용품으로 사용하면 세금을 내야 한다. 서울옥션에 대한 구체적인 세무조사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일각에서는 ‘미술품을 통한 증여가 해외에서 이뤄지면 과세당국이 포착하기 어려운데, 이 점을 활용하는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해 (관세청이) 들여다볼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옥션은 “업무상 해외 거래가 많아서 수출입 신고가 제대로 됐고, 그것에 맞게 돈이 들어가고 나왔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5년에 한 번 진행하는 조사”라며 “외국환 거래나 증여 이슈와 관련된 사안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세계의 서울옥션 경영권 인수는 공식적으로 종료되지는 않았다”면서도 “협상 기간이 길어지고 주변 상황이 달라지면서 단기간 타결되기는 어려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세계적인 경매업체 크리스티는 명품 패션 브랜드를 다수 보유한 케링 그룹에 인수된 뒤 핸드백을 시작으로 주얼리, 고가 시계, 와인 등 명품 옥션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신세계도 백화점 채널에서 쌓은 상품 경쟁력을 활용해 예술품 외의 고가 명품까지 취급 품목을 확대하는 방안을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사진=크리스티 홈페이지


한편 신세계는 서울옥션 없이도 자체 미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은 이미 갖춘 상태다. 1960년대부터 국내 백화점 최초로 화랑을 운영하며 미술 관련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으며 미술 사업 조직 ‘갤러리팀’은 2019년부터 임원급 조직으로 개편해 힘을 실었다. 갤러리팀은 최근 몇 년간 전시·기획·컨설팅 등 전문 인력을 대거 확충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통업계에서는 신세계가 미술품뿐만 아니라 고가 주얼리와 시계, 패션, 와인 등 백화점 업력을 활용할 수 있는 품목으로까지 옥션 사업을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모델이 ‘크리스티’다. 세계적인 경매업체 크리스티는 1998년 구찌, 생로랑, 발렌시아가 등의 패션 브랜드를 보유한 케링 그룹에 인수된 뒤 명품 경매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2년 온라인으로 핸드백 경매를 시작했으며 보석류와 고급 시계, 도자기 등 골동품과 와인에 이르기까지 거래 분야를 확대했다. 국내의 경우 일부 중고 거래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리셀 차원의 명품 패션과 신발 정도가 거래되는 수준이다.



한국 양대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이 주얼리와 핸드백 등 명품 경매를 일부 진행하고는 있지만, 그 규모나 출품작 풀에 있어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이에 신세계가 (서울옥션 인수와 관계없이) 기존 판매 프로세스를 활용해 ‘명품 옥션’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것이라는 데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명품과 예술(미술) 작품 고객층이 겹친다기보다는 ‘이 시계를 사는 고객’을 ‘이 정도 작품을 살 수 있는 고객’으로 추가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며 “먹거리와 잠재 고객을 늘려야 하는 입장에서는 새 성장동력으로 고민해볼 법한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신세계는 인수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삼가며 “계속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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