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혼란에 급속히 위축됐던 외화채 발행이 연초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어 달러나 유로 등 외화 자금 조달에 나서는 기업들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전날 글로벌 투자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달러채 수요예측에서 154억 달러(약 19조 원) 규모의 투자 주문을 받았다. 투자 수요가 예상을 넘어서자 SK하이닉스는 당초 20억 달러 발행을 계획했으나 5년물 발행 규모를 2배 늘린 10억 달러로 확대하면서 총 25억 달러의 외화채를 발행했다. 회사 측은 3년물과 10년물은 각각 7억 5000만 달러씩 발행한다. BoA메릴린치와 BNP파리바·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크레디아그리콜CIB·HSBC·MUFG·스탠다드차타드가 주관 업무를 맡았다.
SK하이닉스가 외화채 발행에 나선 것은 2년 만이다. 신용도가 ‘BBB-’로 투자 적격 등급 중 가장 낮은 데다 인텔의 낸드 사업 인수와 재고 부담 증가 등으로 차입금이 5조 원을 넘어서는 등 재무 부담이 커졌지만 더 이상 기준금리가 큰 폭으로 뛰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려 금리 메리트를 눈여겨본 투자자들이 몰린 것으로 해석된다.
SK하이닉스는 이번 발행에서 최초제시금리(IPT)로 전일 기준 미국 국채금리보다 280bp(1bp=0.01%포인트) 높은 6.8% 수준을 제시했다(3년물 기준). 그러나 수요가 몰리면서 최종 발행금리는 이보다 40bp 낮은 6.4% 안팎으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5년물과 10년물 역시 최초제시금리(315bp·360bp) 대비 각각 40bp·50bp 낮은 6.5%, 6.7% 선이다. 10년물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채권 중 하나인 녹색채권으로 발행한다.
앞서 외화채 시장을 찾은 한국수출입은행과 포스코에도 역대급으로 많은 자금이 쏟아졌다. 한국수출입은행은 35억 달러를 모집하면서 전 세계 615곳 기관으로부터 170억 달러(약 21조 원) 규모의 인수 주문을 받았다. 특히 우량한 신용등급(AA)에 힘입어 장기물인 10년물에 발행액의 6배가 넘는 64억 달러가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투자자들의 러브콜에 힘입어 수출입은행은 역대급 외화를 조달하며 한국물에 대한 신인도를 높였다.
20억 달러 외화채를 발행하는 포스코 역시 총 175억 달러(약 22조 원)에 달하는 투자 주문을 받아 역대 최대 주문량을 기록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의 채권 담당자는 “한국 기업의 경우 밸류에이션 대비 스프레드가 높아 가격 메리트가 좋은 편”이라며 “특히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면서 연초 가격이 싼 채권을 사들이려는 기관들이 몰렸다”고 분석했다.
포스코에 이어 SK하이닉스까지 수요예측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올해 외화 조달을 준비하는 기업들도 채권 발행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주택금융공사(유로)와 우리은행·현대캐피탈 등이 외화채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은행(4억 2500만 달러)과 국민은행(8억 달러), SK텔레콤(5억 달러), 기아(6억 달러) 등도 상반기 외화채 만기가 도래해 차환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 시점이 도래해 차환 발행을 준비하는 금융회사들도 있다. 한화생명은 4월 23일 10억 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를 앞두고 자금 조달을 준비 중이며 KDB생명도 5월 21일 2억 달러어치 채권의 상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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