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비가 내린 지난 13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전국의 모든 약재가 모였다는 이곳에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약재’, ‘전통’과는 멀어 보이는 젊은 손님들이 영업 시작 전부터 입장을 기다리며 줄 선 곳은 최근 시장 한가운데 문 연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이다. 이색적인 위치와 오래된 극장을 개조한 독특한 인테리어가 화제를 모으며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나 봤을 법한 ‘오픈런’이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동과 스벅의 특별한 만남이 전통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상생의 선례로 호평 받는 가운데 이제는 이 에너지가 기존 상점의 매출 증대로도 이어지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스벅 효과’ 이후의 ‘함께 오래가는’ 지속가능한 상생·부흥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달 16일 문 연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은 1960년대에 지은 경동 극장을 리모델링한 매장으로 MZ 세대의 ‘복고 감성’ 감성을 자극해 개점과 동시에 ‘핫 플레이스’로 부상했다. 젊은 고객 유입을 위해 경동시장이 스타벅스에 먼저 입점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동시장은 최근 노후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젊은 시장’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이어왔다. 2018년에는 전통시장과는 경쟁 채널일 수 있는 이마트의 노브랜드가 문을 열었고, 2019년에는 시장 안 건어물 건물에 청년 상인들의 소규모 점포를 모아 놓은 청년몰 ‘서울훼미리’도 들어왔다.
유통 대기업에 먼저 손을 내민 시장의 노력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스타벅스 오픈 후 보름 동안 누적 방문자 수는 2만 명을 넘어섰고, 같은 기간 청년몰에 있는 식당들의 매출은 1.5~2배가량 늘었다. 그동안 덜 알려졌던 경동시장 일부 음식점이 스타벅스 연관 검색어로 떠오르며 젊은 손님이 많아졌다는 점도 ‘스벅 효과’ 중 하나다.
문제는 ‘젊은 경동’의 효과가 일부에 그칠 뿐, 다수 점포는 20~30대 유입으로 인한 수혜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 경동시장 주력 상품이 중·장년 대상의 한약재다 보니 스타벅스를 찾은 20~30대의 구매 욕구를 자극할 재화가 많지 않다. 이날 스타벅스를 찾은 김소희(28)씨는 “시장 안에 먹을 것도 마땅치 않고, 한약재나 홍삼은 비싸서 사기 어렵다”고 말했다. 상인들도 유동인구가 늘어 기분은 좋지만, 가시적인 매출 증가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30년 넘게 경동시장에서 나물류를 판매해 온 상인 최모(78)씨는 “카페가 생겼다고 젊은 사람들이 가게에 많이 오지는 않는다”며 “오랜 단골들만이 찾을 뿐”이라고 전했다.
이용 시간대의 미스 매치도 ‘전통과 젊음의 조화’라는 시장의 비전과 지속가능한 상생을 위한 극복 과제로 지적됐다. 스타벅스는 경동 1960점 인기에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였던 영업시간을 이달 18일부터 오후 10시까지로 2시간 연장하기로 했다. 반면 시장 상인들은 여전히 새벽 3~4시에 가게 문을 열고, 오후 5시면 대부분 문을 닫는다. 젊은 고객층의 주 방문 시간대에 오히려 상점들은 문을 닫아 시장을 둘러보고 싶어도 제대로 경험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다.
시장 상인들도 이른바 ‘스벅 오픈 발’이 길게 가지 않을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함께 오래가기’ 위한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먼저 스타벅스와의 협약으로 조성한 상생기금으로 시장 시설을 현대화할 계획이다. 김영백 경동시장 상인연합회장은 “고령층이 많이 이용하는 시장 특성 상 에스컬레이터 설치가 꼭 필요한 사업”이라며 “대형 디스플레이도 설치해 시장을 바꿔갈 것”이라고 밝혔다. 경동시장은 시장과 상점의 인지도 제고, 그리고 거래 활성화를 위해 마켓컬리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 오픈마켓 입점도 추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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