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한파에도 지난해 4분기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낸 TSMC가 일본·미국·유럽 등에 추가 생산 기지를 잇따라 건설하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2위 기업 삼성전자(005930)와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 각국 정부·의회의 파격적인 혜택에 힘입은 결과다. 반면 한국에서는 SK하이닉스(000660)가 120조 원을 투자하기로 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우 각종 규제 문제로 4년이 다되도록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16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일본에 두 번째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웨이 CEO는 제2 공장 진출의 중요한 요소로 정부의 지원을 들었고 일본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환영의 입장을 냈다. TSMC는 이미 지난해부터 일본 구마모토현에 12~28㎚(나노미터·10억 분의 1m) 반도체 공정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통상 5년가량 걸리는 공사 기간을 일본 정부의 도움을 받아 2년 정도로 대폭 줄였다. 일본 정부는 공장 건설에 필요한 투자금 1조 2000억 엔(약 11조 6000억 원) 가운데 40%인 4760억 엔(약 4조 6000억 원)을 보조금으로 지원한다. 일본 정부의 전폭적인 협력은 결국 TSMC의 제2 공장 건설 구상까지 끌어냈다.
최근 TSMC의 세계 진출은 일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TSMC는 2024년 4㎚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공장을 짓고 있다. 또 독일 드레스덴에 유럽 내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독일 정부와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 갈등 속에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국에서도 난징의 28㎚ 생산 시설 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 TSMC는 기술 부문에서도 올 2분기 2㎚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연구개발(R&D)센터를 건설해 초격차를 꾀하기로 했다. 1㎚ 공장도 이르면 2026년 착공, 2027년 시범 생산, 2028년 양산 과정을 밟을 예정다. 이는 SK하이닉스가 최첨단 메모리반도체 생산 기지로 낙점한 용인 클러스터의 상황과 크게 대비된다. 이 클러스터는 SK하이닉스가 2019년 2월 사업 추진을 공언한 지 4년이 됐음에도 정부·국회·지방자치단체의 협조를 얻지 못해 착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 토지 보상, 공업용수 인허가 등 각종 문제가 겹겹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에는 윤석열 대통령 참석하에 열릴 예정이던 착공식도 돌연 무산됐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