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현 모(34) 씨가 사용하는 샴푸명은 ‘#64320121’이다. 셀프 문진을 통해 총 1만 4494개의 타입 중 현 씨에게 필요한 탈모와 각질 제어를 돕는 성분만 쏙쏙 골라 넣은 이른바 ‘나만을 위한 샴푸’다. 샴푸 제조에 사용된 성분 비율에 따라 생성되는 일곱 자리의 ‘레시피 넘버’는 제품 패키지에도 각인된다. 현 씨는 “고가의 클리닉에 가지 않아도 전문가로부터 개인 관리를 받는 느낌이 들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유통 업계가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개인화)’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따라 소비절벽이 닥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가운데 개인 맞춤형 서비스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겠다는 전략이다. 커스터마이징은 티셔츠나 신발에 이름을 새기는 단순 각인 서비스부터 맞춤형 건강기능식품이나 화장품 등 신사업 형태로도 시장에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특히 판매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 D2C(Direct To Customer·소비자 직접 판매) 비중을 키우고 있는 패션·식품 업체들에 개인화 서비스는 앞으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엔데믹 전환에 맞춰 국내 매장을 새 단장하면서 커스터마이징존을 대거 확충했다. 앞서 나이키는 지난해 7월 홍대 상권에 신개념 체험형 오프라인 매장인 ‘나이키 스타일’의 전 세계 1호점을 열었다. 매장에서 의류나 신발을 구매한 후 한정판 패치를 무료로 부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특별 제작된 펜으로 직접 신발을 꾸밀 수도 있다.
이는 D2C 채널 강화 전략과 맞닿아 있다. 글로벌 나이키는 2019년 아마존에서 철수한 뒤 자사몰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중간 판매 수수료를 낮춰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 결과 2021년 기준 나이키의 매출 40%가량이 D2C에서 발생하는 성과를 냈다. 국내에서는 ABC마트 등 신발 편집숍 판매 비중을 줄이는 대신 자사몰에서 한정판 신발을 발매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달 18일 명동에 국내 최대 매장을 오픈한 아디다스 역시 D2C 강화를 올해 목표로 내세웠다. 패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 직접 판매를 위해서는 직영점에서만 파는 한정판 제품을 늘려야 하는데 커스터마이징이 그 일환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식품 업계에서도 포착된다. 농심이 공식몰에서 운영 중인 ‘농꾸’ 서비스가 대표적 사례다. 농꾸는 농심의 대표 스낵과 라면 패키지에 원하는 사진과 문구를 넣어주는 서비스로 지금까지 총 1만 4000건이 접수됐다. 이에 힘입어 농심몰의 회원 가입자 수는 최근 3개월간 월평균 216%가량 증가했다. 식품 업계는 대형마트와 e커머스 등 유통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사몰을 키우기 위해 개인화 서비스를 도입하는 업체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다이어트식과 저염식 등 개인 맞춤형 식단으로 세분화된 케어푸드 시장 역시 비슷한 분위기다. 현대그린푸드에 따르면 자사몰 ‘그리팅몰’에서 개인 맞춤형 식단 중 하나인 당뇨식의 재구매율은 50% 이상이다.
개인화는 신사업의 대표 키워드로도 손에 꼽힌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글로벌 맞춤형 뷰티 시장 규모는 2019년 6억 5500만 달러(약 8095억 원)에 불과했으나 2025년 40억 달러(약 5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디바이스까지 포함하면 전체 뷰티 시장에서 맞춤형 카테고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에 달한다. 개인의 기호와 취향이 소비의 중요한 기준이 된 데다 향이나 제형, 기피 원료 등을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점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한국의 경우 2019년 법 개정을 통해 맞춤형 화장품에 대한 정의를 명시하고 원료를 추가하거나 혼합해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이 각 연구소를 통해 개인 맞춤형 화장품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가운데 e커머스인 CJ온스타일도 최근 관련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기업인 코스맥스와 손잡고 맞춤형 화장품 브랜드 ‘웨이크미’를 출시했다. 현재는 샴푸 카테고리에서 개인화 서비스를 운영 중인데 향후 스킨케어로 라인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시장도 새 먹거리로 각광받고 있다. 개인 맞춤형 건기식은 전문가 상담을 바탕으로 개인에 맞게 영양제를 소분·조합해 판매하는 것을 뜻한다. 식약처에 따르면 2020년 규제 특례 시범 사업으로 지정된 개인 맞춤형 건기식의 지난해 1~9월 매출은 79억 원, 이용자 수는 약 7만 8000명으로 집계됐다. 현재 풀무원건강생활과 암웨이 등 총 33개 기업이 1727개 매장에서 맞춤형 건기식 사업을 운영 중이다. 국내 건기식 1위 KGC인삼공사도 지난해 10월 맞춤형 건강 솔루션을 제공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케어나우 3.0’을 론칭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통해 개인 유전자를 분석하고 맞춤형 건기식을 추천해주는 것이 골자다.
한 유통 업계 관계자는 “올해의 소비 트렌드로 ‘평균 실종’이 꼽힐 만큼 미래의 소비자인 지금의 10~20대는 타 세대와 비교해 개인 성향이 더욱 두드러지는 만큼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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