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각 가정을 달군 ‘난방비 폭탄’은 누구 탓일까. 국민 절반은 ‘이게 다 윤석열 때문이다’ 라고 외치고 싶겠지만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의 ‘탈원전 및 묻지마 신재생 확대’ 정책에 따른 천문학적 비용을 뒤늦게 떠안으며 각종 비난을 감내해야 하는 가여운 피해자 입장에 가깝다.
우선 올 겨울 난방비 급등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유럽연합(EU) 회원국은 러시아 제재를 위해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막아버렸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주요국 또한 난방 연료원으로 가스를 주로 사용하는 만큼 ‘제 발등을 찍는 행위’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는 했지만 ‘자유주의 수호’를 위한 EU 회원국의 의지는 굳건했다.
EU 소속국의 결단은 박수를 받아 마땅했지만,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하자 EU의 경제적 어려움은 당장 현실화 됐다. 2020년 기준 EU 회원국의 천연가스 수입분 중 러시아산 비중은 38.2%에 달한다. EU는 러시아 제재를 위해 전체 가스 사용량 중 10분의 4 가량을 여타국에서 조달하며 글로벌 가스 가격을 끌어올렸다.
이에따라 국내 수입기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또한 지난해 9월 1톤당 1470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1년 9월 기준 LNG 1톤당 가격이 570.2달러였다는 점에서 1년새 3배가량 껑충 뛴 셈이다. 특히 지난해 9월은 LNG 수요 비수기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LNG 사재기 경쟁이 벌어지며 LNG 가격이 겨울철 보다 훨씬 높았다.
글로벌 탄소중립 기조 또한 LNG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 발전은 시간이나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널뛰기 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발전 간헐성을 메워줘야 할 가스발전 가동이 필수다. 가스발전은 가동 명령시 1시간 이내에 발전이 가능해 각국은 신재생 발전의 단점 보완을 위해 가스 발전에 의존하고 있다(일각에서 주장하는 에너지저장장치 설비 확대는 값비싼 비용 때문에 해법이 되지 못한다).
각국이 탄소중립을 위해 석탄발전을 줄인 것 또한 비교적 청정에너지로 평가받는 천연가스 수요를 늘렸다. 실제 2021년 글로벌 이상 기후로 유럽지역 풍력 및 태양광 발전이 감소하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기도 전인 지난해 1월 1톤당 LNG 수입가격이 1138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탄소중립 청구서가 급등한 LNG 가격을 통해 1년여전부터 날아들었던 셈이다. 이외에도 전년 대비 3도 이상 낮은 올겨울 기온 또한 난방수요 급증으로 이어져, 난방비 폭탄의 원인이 됐다.
이전 정부의 ‘에너지 포퓰리즘’ 정책도 현재 난방비 폭탄에 영향을 미쳤다. 앞선 요금인상 요인은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외생변수’ 이지만, 이번 영향은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비판 소지가 더욱 크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가스요금이 고공행진을 하던 집권기 후반, 21개월 가량 가스 요금을 동결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주택용 가스요금을 2020년 7월 11.2% 인하한 뒤 지난해 3월까지 이를 동결했다. 1톤당 LNG 수입가격은 2020년 12월 358달러에서 2021년 12월 892달러로 1년 새 3배 가까이 껑충 뛰었지만 물가안정을 이유로 가스요금 동결을 고집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선거 이후인 지난해 4월에야 요금 인상을 본격화했다. 가스요금을 비교적 일찍 정상화 했다면, 각 가정의 수요조절 및 부담분 분산 등으로 난방비 급등에 따른 충격을 줄일 수 있었다.
부담은 현 정부가 떠안았다. 지난해 4월 가스요금은 1MJ(메가줄·가스 사용 열량 단위)당 14원 22전에서 14원 65전으로 1년 9개월 만에 인상됐고 5월(15원 88전), 7월(16원 99전), 10월(19원 69전)에도 인상이 단행됐다. 가스공사의 미수금 규모(약 9조원)를 감안하면 가스요금은 추가 인상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억지로 잠가뒀던 ‘가스요금 인상’이라는 수도꼭지가 현 정부들어 본격 터진 셈이다. 이 같은 배경을 모르는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윤석열 정부를 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현 정부를 무조건 옹호할 수는 없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코레일 사장을 역임했던 최연혜 전 자유한국당 의원을 가스공사 신임 사장으로 낙점했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낙하산 인사를 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당시 관가에서는 가스공사의 재무 위기 및 에너지 수급 이슈 때문에 에너지 전문가를 사장으로 낙점해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했다. 지역난방공사 신임사장 또한 정용기 전 자유한국당 의원을 낙점하며 “대통령실은 에너지 위기 대응보다 정권수립 공신들을 챙기는 것이 우선”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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