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기 대비 0.4% 감소하면서 10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수출 감소에도 우리 경제를 떠받쳐왔던 민간소비가 갑작스레 고꾸라진 탓이다. 올해도 수출 여건이 좋지 않은 데다 고물가·고금리에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만큼 경제 전망이 밝지 않다. 정부는 올해 1분기 플러스 성장을 예견했으나 한국은행은 연간 성장률을 낮춰 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
26일 한은은 지난해 4분기 실질 GDP(속보치)가 전기 대비 0.4% 감소했다고 밝혔다. 2020년 2분기(-3.0%) 이후 2년 6개월 만에 발생한 역성장이다. 4분기 경기 둔화에도 지난해 연간 성장률은 한은이 당초 예상한 2.6%에 부합했으나 2021년(4.1%)보다는 큰 폭 둔화됐다.
지난해 4분기 역성장한 것은 우리 경제 양대 축인 수출과 민간소비가 모두 꺾였기 때문이다. 먼저 수출은 반도체·화학제품을 중심으로 5.8%나 감소해 2020년 2분기(-14.5%) 이후 가장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순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지난해 2분기(-1.0%), 3분기(-1.8%), 4분기(-0.6%) 등으로 반년 넘게 마이너스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수출 감소와 맞물려 제조업 성장률도 지난해 2분기(-0.7%), 3분기(-0.8%), 4분기(-4.1%) 등으로 세 분기 연속 줄었다. 제조업이 세 분기 연속 감소한 것은 1997년 3분기부터 1998년 2분기까지 네 분기 연속 감소한 후 약 24년 만이다.
수출과 제조업 부진에도 지난해 경제가 버텼던 것은 민간소비가 2분기(2.9%)에 이어 3분기(1.7%)까지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소비가 4분기 -0.4%로 곤두박질치자마자 전체 성장률도 뒷걸음질 친 것이다. 4분기 민간소비는 의류·신발 등 재화에서 숙박·음식 등 서비스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줄었다. 이에 대해 한은은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이후 나타났던 펜트업(지연 소비) 수요가 소진된 영향으로 풀이했다. 여기에 부동산 거래 위축으로 이사를 하지 않아 가전제품 수요도 줄었고 겨울철을 앞두고 날씨마저 따뜻해 의류 소비도 줄었다는 것이다.
결국 지난해 4분기 민간의 성장률 기여도는 -1.1%포인트로 크게 후퇴했다. 그나마 정부의 성장률 기여도가 0.8%포인트로 하락 폭을 간신히 줄였다. 정부는 물가 상승 등으로 미뤘던 예산을 집행하고 갑작스러운 독감 유행에 건강보험급여비 지출을 늘렸다.
정부는 올해 1분기 성장률이 다시 플러스 전환해 두 분기 연속 역성장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올해 1분기는 기저 효과, 중국 경제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등으로 플러스 성장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며 “올해 상반기 우리 경제는 세계경제 위축 등으로 어려운 시기가 되겠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점차 회복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상반기 재정지출을 확대해 경기 방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추 부총리는 “정부는 올해 상반기 경기 보완을 위해 340조 원 규모의 재정·공공투자·민간사업 조기 집행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며 “규제 혁신, 세제·금융 지원 등을 통해 올해 경제 회복의 돌파구인 수출·투자 활성화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경기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한은은 앞서 올해 연간 성장률을 1.7%로 예상했는데 이를 다음 달 경제 전망을 통해 하향 조정할 것을 공식화한 상태다. 올해 글로벌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면서 수출이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20월 수출액은 336억 21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7% 줄었다. 벌써 무역수지 적자가 102억 6300만 달러로 10개월 연속 적자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발표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 1.6%도 낙관적이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민간 경제분석기관인 LG경제연구원은 1.4%를 예상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가 집계한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올해 평균 성장률 전망치는 1.1% 수준이다. 성장률이 1%보다 낮거나 연간으로 역성장할 수 있다는 일부 관측도 있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리오프닝 효과가 마무리됐고 부동산 경기 둔화에 이자 비용 급등으로 대내외 모두 성장 동력이 약화됐다”며 “한국은 대내외 리오프닝 수요로 인한 고성장세가 마무리된 만큼 연간 성장률이 1%를 밑돌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이날 황상필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올해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부진이 지속되고 있지만 개인의 신용카드 사용액은 음식점 등을 중심으로 소폭 늘면서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1분기 성장률은 수출 회복세와 펜트업 소비가 얼마나 되살아날지, 금리·물가 부담이 어느 정도 나타날지 등에 달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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