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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의 아트레터]이민자들이 만들어낸 뉴욕의 식문화

유대계 이민자들 미국 이주 이후

‘델리카트슨' 중심의 베이글 대중화

오늘날 미국 음식문화 발달에 기여

뉴욕 최초의 박물관인 뉴욕 역사협회 박물관(New York Historical Society)에서 유럽에서 건너온 유대계 이민자들이 미국에 새롭게 적용한 식문화의 연대기를 조명하는 전시가 한창이다.




뉴욕을 대표하는 음식이 있다. 베이글이다. 오랜 세월 동안 뉴요커 뿐만 아니라 뉴욕을 방문하는 전 세계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베이글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베이글의 기원은 17세기 초 폴란드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즐겨먹었던 음식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20세기 유대계 이민자들이 뉴욕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1880년부터 1924년까지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계 이민자들은 무려 200만 명이 넘는다. 이에 뉴욕에서는 이들이 모여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식자재를 구입할 수 있는 식료품점과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결합된 ‘델리카트슨(Delicatessen)’이 발달했다. 베이글 또한 델리카트슨에서 팔던 음식 중 하나였고, 현재는 ‘뉴욕 베이글'이라는 대명사를 얻을 만큼 유명한 음식이 됐다. 델리카트슨은 현재 뉴욕에서 ‘델리(Deli)’로 축약돼 불리며, 미국 식문화의 초석이다.

전시장에는 유대계 이민자들이 ‘델리카트슨(Delicatessen)’에서 즐겨먹던 베이글, 파스트라미 샌드위치 등에 대한 설명과 음식 모형이 전시돼 있다.


이렇게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음식 전통을 미국에 새롭게 적용한 식문화의 연대기를 조명하는 전시가 현재 뉴욕역사협회 박물관 (New York Historical Society)에서 열리고 있다. 뉴욕 역사협회 박물관은 뉴욕의 역동적인 역사를 기록하고 소개하고자 19세기 초 설립된 뉴욕 최초의 박물관이다. 전시는 '그녀가 먹고 있는 걸로 먹을게요:유대인의 델리(I’ll Have What She’s Having: The Jewish Deli)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다. 당대 뉴욕의 식문화를 알려주는 사진, 종업원들이 입었던 유니폼, 형광색 식당 간판, 식당 메뉴판 등이 다양한 역사 자료와 함께 소개되고 있다.

그렇다면 유대계 이민자들은 어떻게 현재 미국의 식문화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까? 그 답은 유대인들의 특별한 식사 규율에 있다. 유대인들은 엄격한 유대교 율법에 따라 조리된 음식인 ‘코셔 (Kosher)’ 푸드 만을 섭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는 섭취할 수 없고, 그 외 가축은 유대교인의 감독하에 도축된 고기만을 먹을 수 있다. 유대계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해오기 전, 대다수 미국인의 주된 육류 섭취는 돼지였다. 하지만 유대계 이민자들이 대거 이주한 후 미국의 소고기 수요는 증가했고, 이는 소를 기르는 축산업의 발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후에 이는 현재 미국의 상징으로 알려진 햄버거와 샌드위치 같은 음식이 발달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된다.

유대계 이민자들의 이주로 20세기 초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생긴 ‘델리카트슨’은 식료품점과 식당이 결합된 공간이었다. '델리'가 생기기 이전 이민자들은 수레에 음식과 식료품을 실어나르며 거래했다.




시간이 흘러 1930년대 중반 뉴욕에는 5000여 개가 넘는 델리들이 생겼다. 델리에서는 베이글, 콘 비프 샌드위치, 파스트라미 샌드위치, 피클과 같은 음식이 판매됐다. 점차 비(非)유대인 고객들의 입맛까지 사로잡게 되면서 델리 음식은 본격적으로 미국인들의 식탁에 오르게 된다.

많은 유대계 이민자들이 거주했던 현재 현재 뉴욕의 로워 이스트사이드(Lower East Side) 지역에는 아직도 많은 델리들이 남아 있다. 그중 뉴욕의 유명 관광 명소 중 한 곳인 카츠 델리카트슨(Katz’s Delicatessen)은 1888년에 설립된 13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델리다. 아직도 카츠 델리카트슨 앞은 델리의 시그니처인 파스트라미 샌드위치를 맛보기 위한 뉴요커들과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뉴욕 미드타운의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도 많은 델리들이 분포해 있었다. 수많은 극장과 공연장이 즐비한 브로드웨이 주변 델리들은 공연 전후로 허기를 달래려는 관람객들로 붐볐다. 그중 가장 유명했던 델리는 루벤스 레스토랑(Reuben’s Restaurant)이었다. 1908년부터 2001년까지 영업했던 이 식당은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샌드위치와 치즈케이크를 먹기 위해 즐겨 찾던 장소였다.

뉴욕에서 1908년부터 2001년까지 영업했던 델리 루벤스 레스토랑(Reuben’s Restaurant)의 메뉴판.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이곳은 공연장을 찾은 관람객과 배우들로 붐볐다고 한다.


유럽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계 이민자들에게 델리는 단순히 고향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 이상의 의미 있는 장소였다. 이민자들 중 누군가는 델리의 종업원, 요리사, 손님이 되며 하나의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미국의 경제를 이끄는 주요 산업인 금융,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에는 항상 유대인들이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아는 사실이지만 ‘먹는’ 문화 또한 그들의 기여가 컸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글·사진(뉴욕)=엄태근 아트컨설턴트

필자 엄태근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뉴욕 크리스티 에듀케이션에서 아트비즈니스 석사를 마친 후 경매회사 크리스티 뉴욕에서 근무했다. 현지 갤러리에서 미술 현장을 경험하며 뉴욕이 터전이 되었기에 여전히 그곳 미술계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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