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비자들에게 '해외에서 팔리는 신라면'은 언제나 논쟁거리다. 건더기 크기부터 화학조미료(MSG) 사용 여부까지 내수용 라면과 비교가 되기 일쑤다. 라면 회사들은 국가별로 다양한 음식문화와 가격 정책에 따라 다른 레시피를 적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로 수출하거나 현지에서 직접 생산한 라면은 건더기 양이 많고 더 큰 것이 사실이다. 맛뿐만 아니라 용기도 국가별로 다른 형태를 보인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이다.
4일 농심에 따르면 미국 현지에서 판매되는 신라면의 용기면은 총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사발면(Bowl Noodle)'과 '큰사발면(Big Bowl)'이다. 신라면큰사발은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114g 용량의 컵라면이다. 그러나 신라면사발면은 어딘가 낯설다. 농심의 또 다른 용기면 제품인 '육개장사발면', '김치사발면'과 같은 국사발 모양의 86g짜리 컵라면이기 때문이다. 농심이 신라면을 사발면 형태로 판매하는 건 미국이 유일하다.
농심은 2005년 미국 제1공장을 설립하고 현지 생산에 돌입하면서 신라면사발면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 육개장사발면과 김치사발면이 먼저 수출을 통해 미국에서 팔리고 있었던 만큼 통일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농심 관계자는 "88올림픽 당시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에게 육개장사발면과 김치사발면이 인기를 얻었고, 이에 착안해 미국에서 신라면을 사발면 형태로 판매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육개장사발면, 김치사발면을 생산하기 위해 미국 1공장에 사발면 라인을 구축한 만큼 신라면도 사발면 형태로 만들면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재질도 다르다. 농심은 미국이 전자레인지 조리 식문화인 점을 고려해 신라면사발면의 재질을 배달 용기와 같은 폴리프로필렌(PP)으로 변경했다. 반면 내수용 사발면의 경우 만지면 포슬포슬한 폴리스티렌(PS)로 만들어져 전자레인지 조리를 해선 안 된다. 용기의 변형이 생기거나 구멍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질이 다른 만큼 미국 신라면사발면은 가격은 월마트 기준 개당 2달러꼴로, 한국의 신라면큰사발(1250원)보다 비싸다.
지난해 라면 수출액은 7억 6543만 달러(약 9453억 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해외에 공장을 두고 현지에서 직접 라면을 생산해 판매하는 것을 고려하면 실제 한국 라면의 세계 판매액 규모는 훨씬 크다. 관련 업계는 K라면이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요인으로 신라면큰사발과 같은 철저한 현지화를 꼽는다.
삼양식품의 경우 대표 브랜드인 '불닭볶음면'을 현지인 입맛에 맞게 변형했다. 중국에서는 마라를, 미국에선 핫소스인 하바네로라임을, 중동에선 마살라를 넣은 것이 대표적이다. 팔도의 경우 러시아에서 인기 컵라면인 '도시락'을 치킨과 버섯, 새우 등 다양한 맛으로 출시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최근 ‘베트남 연간 1인당 라면 소비량 세계 1위 차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라면 시장점유율은 5%에 불과하며, 불린 라면(생면) 등 현지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과거 K라면은 현지 교민이 타깃이었지만, 몇 년 새 현지인들이 찾는 음식으로 성장했다"며 "해외에서 K라면의 인기가 상승할수록 라면의 맛과 용기의 형태도 점점 더 다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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