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사 10곳 중 7곳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대한 모호한 평가 개념과 기관별로 상이한 평가 방식 때문에 평가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 글로벌 ESG 공시 기준 최종안이 공개되며 국내에서도 기업의 ESG 공시 의무 및 평가가 다시 화두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 부재로 혼선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ESG 규제 과속’으로 인한 기업들의 경영난 우려를 고려해 금융 당국이 공시 도입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관련 기사 3면
12일 서울경제가 경영자총협회·코스닥협회와 공동으로 진행한 ‘ESG 평가 및 경영 전략’ 설문을 취합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36%가 ESG의 모호한 범위와 개념을 전략 수립에서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 꼽았다. 30%는 '평가 기관 난립으로 인한 상이한 평가 방식'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기업의 약 70%가 ESG의 고무줄 잣대로 혼란을 겪는 셈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ESG 평가 기관은 전 세계적으로 130개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각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기관들까지 포함하면 600개를 웃돈다. 국내로만 한정하면 30~40여 개의 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추가적 비용 등 기타 의견을 낸 응답자도 26%에 달했다. 이번 설문은 국내 대기업그룹 15곳과 코스닥 상장사 15곳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윤철민 대한상의 ESG경영팀장은 "평가 기관에 따라 ESG 평가 결과가 큰 차이를 보여 신뢰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처럼 변동성이 커지면 기업들의 불안도 증대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올해 글로벌 ESG 공시 기준 중 일부의 초안이 처음으로 공개되며 각국은 ESG 공시 및 평가를 강화하는 각종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당장 유럽연합(EU)은 해당 기업뿐 아니라 협력사의 ESG 경영 수준까지 평가해 공시하는 공급망 실사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후 분야와 관련한 상장기업들의 공시 의무화를 제안한 상태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ESG의 장벽이 높아지고 있지만 국내 기업, 그 중에서도 특히 중소기업들은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규모가 큰 기업의 55%는 그나마 ESG 부서를 두거나 임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지만 나머지는 전담 인력이 한 명도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평가 기관에 컨설팅을 의뢰한 기업들도 있지만 36.7%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답했다.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코스닥 상장사들의 사정은 더 나쁘다. 연평균 1억 3400만 원이나 드는 컨설팅 비용을 댈 여유가 없어 '별다른 대응 계획이 없다'는 업체들이 많았다. 이에 경영계에서는 금융 당국이 ESG 공시 의무화 도입 시기에 대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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