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전망한 기업들의 실적 예상치와 실제 공개된 영업이익 간 차이가 지나치게 커 증권사 보고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실적 전망치를 제시한 기업 10곳 중 8곳은 실제 숫자와 20% 이상 차이가 났다. 전문가들은 “독자적인 리서치 구조가 아니라 기업들이 제공하는 자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이 “증권사 리포트의 신뢰성을 높이겠다”고 밝힌 만큼 어떤 식으로 개선 작업이 진행될지 주목된다.
13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날까지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한 158개 기업 중 추정치 대비 실제 영업이익 괴리율이 5% 미만인 종목은 18곳(전체 중 11.39%)에 불과했다. 괴리율이란 예상 실적과 기업이 확정 공개한 실적 간 차이다. 괴리율이 5% 정도면 투자자들은 “(증권사가) 예상을 아주 잘했다”고 평가하지만 결과는 10곳 중 1~2곳을 제외하면 사실상 다 틀린 셈이어서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고개를 들 수 없게 됐다. 실적과 전망치 간 괴리율을 10%로 확대해도 158개 중 39곳(24.68%)만 부합했다.
추정치 대비 실제 영업이익의 차이가 가장 컸던 종목은 포스코케미칼이었다. 증권사들이 예측한 포스코케미칼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635억 원인데 실제는 이보다 94.8% 낮은 33억 원에 그쳤다. 포스코케미칼은 지난해 4분기 실적 부진에 대해 “내화물·생석회(라임) 사업을 포함한 기초 소재 사업 부문의 부진 탓”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사들이 예상한 증권 업체의 실적도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 삼성증권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275억 원으로 추정치(1266억 원)를 78.3% 밑돌았다. 미래에셋증권(-52.0%)도 전망치를 50% 이상 밑돌았다. KB금융(-46.3%)·신한지주(-42.7%)에 대한 예상치도 크게 빗나갔다.
그나마 인터넷 관련 업종에 대한 예상치는 적중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증권사들이 실적 추정치를 크게 하향 조정한 것이 배경이다. 네이버(NAVER)의 경우 증권사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익 전망치는 3461억 원으로 실제 영업익(3365억 원)과 2.8%만 차이가 났다. 증권사들이 한층 보수적으로 접근한 카카오는 실제 영업이익(1004억 원)이 전망치(960억 원)를 4.6% 웃돌기도 했다.
주요 증권사들은 “지난해는 금리 급등과 세계 경기 둔화로 유독 실적 예측이 어려운 한 해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매 분기 예상은 틀리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21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한 224개 기업 중 추정치 대비 괴리율이 5% 미만인 기업은 33곳(14.73%)으로 올해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증권사들의 기업 분석 보고서는 개인투자자들에게는 중요 정보다. 증권 전문가들이 더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 산식으로 기업을 분석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증권사의 실적 전망치가 부실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금융투자 업계의 왜곡된 구조를 배경으로 꼽는다. 애널리스트들이 독자적인 분석을 하기보다 기업이 주는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애널리스트에게 적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개인투자자들도 피해를 보는 셈이다.
애널리스트들이 주요 기업에 대한 낮은 눈높이를 낮게 제시했을 때 돌아오는 불이익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증권사 수입의 상당 부분이 법인 영업에서 나와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에서 ‘매도’ 리포트를 낼 수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1월부터 이날까지 투자 의견 ‘매도’ 리포트를 낸 증권사는 미래에셋증권과 한화투자증권 2곳뿐이다. 두 증권사가 합쳐 총 4건의 매도 보고서를 냈는데 종목은 제주항공과 카카오뱅크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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