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이달 20일까지 단 50여 일 만에 누적 무역적자가 187억 달러를 기록했다. 역대 최악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던 지난해(472억 달러)의 40% 규모다. 월간 기준 12개월 연속 마이너스도 확실시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째 이어지며 에너지 가격의 고공 행진이 멈출 줄 모르는 데다 반도체 수출은 1년 전보다 44%나 빠졌다.
21일 관세청의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2월 무역수지는 59억 8700만 달러(20일 기준) 적자를 기록했다.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 줄어든 반면 수입은 에너지 가격 상승 여파로 9.3%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조업 일수를 고려한 일평균 수출액은 14.9% 줄어 감소 폭이 더 컸다. 이 기간 조업 일수는 15.5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일 많았다. 이번 달에도 수출이 줄어들면 5개월 연속 뒷걸음질이다. 수출이 5개월 연속 감소하는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월~8월 이후 처음이다.
반도체의 부진은 예상보다 더 컸다. 1년 전보다 43.9%나 줄었다. 지난해 8월 이후 7개월 연속 감소세로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가격 급락의 직격탄을 맞은 결과다. 반도체 수출액 감소 폭(29억 7000만 달러)이 총수출 감소액(7억 9000만 달러)의 3배에 달했다. 이 외 무선통신기기(-25.0%)와 가전제품(-38.0%)도 코로나19 보복 소비 열풍이 끝나며 큰 폭으로 꺾였고 정밀 기기(-15.6%)와 컴퓨터 주변 기기(-55.5%) 수출액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다만 승용차(56.6%), 자동차 부품(22.5%), 석유제품(16.3%), 철강 제품(3.9%) 등은 수출액이 늘었다.
국가별로는 중국으로의 수출이 22.7% 줄며 약세를 이어갔다. 대중(對中) 수출은 지난달까지 8개월 연속으로 감소했다. 다만 감소 폭은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에 힘입어 전달(31.4%)보다 줄었다. 다만 이 역시 조업 일수 감소에 따른 착시 효과라는 지적도 있다. 이외 지난해 한국의 3위 수출 상대국에 이름을 올린 베트남 역시 수출액이 18.0%나 쪼그라들었다. 다만 미국(29.3%), 유럽연합(EU·18.0%), 인도(26.0%)로의 수출은 늘었다.
수입 증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한 탓이 컸다. 천연가스(81.1%)를 비롯해 원유(7.6%), 석탄(11.2%) 등 에너지 수입도 증가했다. 에너지 수입액(106억 4800만 달러)은 전체 수입액의 26.9%나 차지했다. 반면 반도체 불경기에 반도체(-6.1%), 반도체 제조 장비(-14.7%) 수입액은 줄었다.
이에 이달 20일까지 무역적자는 60억 달러에 육박했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무역수지 적자가 12개월 연속 이어지는 셈이다. 올해 누적 무역적자는 187억 달러다. 올 들어 불과 50일 만에 지난해 총 무역수지 적자의 39.4%를 기록한 것이라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무역적자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반도체·중국 수출 부진이 뼈아프다. 지난해 연간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 중 중국의 비중은 40.3%에 달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현재로서는) 경상수지마저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수출 시장 다변화 등을 빼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더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업황이 예상보다 빨리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고 있지만 변수가 많아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중국의 리오프닝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올해 수출이 반등하려면 경제활동을 재개한 중국이 우리나라의 반도체를 많이 사가야 한다”며 “그런데 중국의 경제활동 재개가 바로 원자재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수 있어 무역수지 적자 해소에 큰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고 짚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