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특가, 갓딜, 할인 끝판왕…
유통업계가 굳게 닫힌 고객 지갑을 열기 위해 ‘초특가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고물가 행진에 가계 부담이 커지면서 가격에 대한 소비자 민감도가 이전보다 훨씬 커진 탓이다. 흥미로운 점은 최저가를 내건 유통가 경쟁이 지난해엔 ‘반값 OO’를 앞세운 대형마트 사이에서 치열했다면, 올해는 격전이 편의점 업계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각 편의점이 상품별로 상시 진행하던 ‘1+1’ 행사나 자체 브랜드(PB) 출시에서 더 나아가 할인 행사의 월례화, 가맹점 자율 할인 기획 등을 띄우고 나선 데는 역설적으로 ‘타 유통 채널 대비 취약한 가격 경쟁력’에 대한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편의점 GS25는 주류와 아이스크림, 신선식품 등 먹거리를 중심으로 한 초특가 및 덤 증정 행사인 일명 ‘갓세일’을 만들어 매월 말 진행하기로 했다. 기존에 브랜드·상품 별로 진행했던 다양한 행사를 갓세일로 단일화해 판을 키우고, 매달 시즌·상권·생활 이슈를 고려한 행사 상품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CU와 세븐일레븐도 3월 한 달 간 지정 통신·신용카드를 이용하면 간편식과 생활필수품을 30~40% 저렴하게 판매한다.
이런 행보를 물가 안정 마케팅으로도 볼 수 있지만, 오히려 가격 경쟁력에 대한 편의점 업계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국내 편의점들은 펜데믹 기간 밀집을 꺼린 대형 유통채널 고객을 흡수하며 특수를 누렸다. 넓고 촘촘한 점포망과 배달·픽업 시스템으로 이용객이 늘었기 때문이다. 홈술 유행에 간편식·도시락 판매 호조까지 더해져 지난해 편의점 2강(强) GS리테일(007070)(GS25)과 BGF리테일(282330)(CU)의 편의점 부문은 모두 매출 7조 원대의 호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다른 오프라인 유통 채널의 영업이 정상화되고, 연초부터 각종 상품 가격 줄줄이 오르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물가 상승은 모든 시장의 당면 과제지만, 묶음 아닌 단일 구매 중심인 편의점은 마트보다 판매가가 상대적으로 비싸다. 최근에는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과자와 냉동식품, 심지어 문구류까지 저렴하게 취급하고, 대량으로 재고를 확보해 물건을 싸게 파는 식자재 마트도 빠르게 세를 불리고 있어 편의점의 가격 매력은 더 떨어졌다. 실제로 한 편의점에서 1200원에 파는 A캔커피는 현재 한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700원에 살 수 있다. 2ℓ 생수 한 병도 같은 회사 제품이 편의점에서 1950원이지만, 식자재 마트에서는 900~1100원 대에 팔린다. 일부 점주는 가격 차가 더 큰 건전지, 쿠킹호일 등 몇몇 비식품을 본사 아닌 다른 데서 싸게 들여와 판매할 정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편의점 특성상 점포들이 대량으로 물건을 받아와 단가를 낮춰 판매하는 시스템이 아니고, 애초 타깃이 할인 폭 큰 대량·묶음 구매 고객이 아니다 보니 가격 차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점포를 운영하는 점주 입장에서는 매달 값이 올라 변경된 가격표를 받아들고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서울시 구로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100~200원 따지는 사람은 애초 편의점 안 오고 마트 간다고들 하는데, 요즘은 편의점 주변에 마트부터 아이스크림 할인점, 식자재 마트, 다이소까지 다 있다”며 “잘 팔린다는 도시락도 폐기 걱정에 무작정 발주할 수도 없고 쌓아둘 공간도 없다”고 말했다.
현장의 이 같은 목소리에 할인 행사를 비롯한 마케팅 기획에 점포 자율권을 확대하는 곳도 나오고 있다. CU는 최근 업계 최초로 가맹점주가 자기 점포의 상권 및 고객, 재고 상황에 맞춰 할인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품목과 할인율은 점주가 정하고, 할인 상품과 내용을 멤버십 애플리케이션에 등록하면 고객이 이를 확인 후 방문하거나 앱에서 구매할 수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