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베카가 뉴욕의 새로운 미술 심장부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대형 갤러리들이 잇달아 트라이베카로 확장 이전을 공식 발표했다. 40년 넘게 뉴욕의 미드타운을 지켜온 마리안 굿맨(Marian Goodman) 갤러리가 대표적이다. 줄리 머레투, 마우리치오 카텔란, 윌리엄 켄트리지 등 대가들을 전속으로 둔 마리안 굿맨 갤러리는 내년 하반기에 트라이베카로 확장 이전한다. 첼시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케리 제임스 마셜, 엘 아나추이, 닉 케이브 등 명성있는 흑인 작가들과 함께 성장한 잭 셰인먼(Jack Shainman) 갤러리도 올 가을 트라이베카의 새 공간으로 이전, 오픈할 예정이다.
사실 트라이베카가 뉴욕 내 첼시를 대체할 예술특구로 성장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첼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와 넓은 전시 공간은 중·소형 갤러리를 운영하는 아트 딜러들이 트라이베카를 선택하게 한 매력적 요소였다. 특히 팬데믹 기간에 트라이베카 상업공간의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임대료는 더욱 낮아졌다. 이는 뉴욕의 첼시, 로워 이스트사이드 등지의 중·소형 갤러리들에게는 좋은 이전 기회가 됐다. 이들이 모여들면서 트라이베카는 생동감 넘치는 예술 지역으로 급성장했다.
무엇보다 트라이베카는, 기업화된 대형 갤러리들이 밀집한 첼시와 차별성을 가진다. 중·소형 갤러리들이 기반을 다진 만큼 트라이베카의 갤러리들은 단단한 결속력을 갖는다. 트라이베카 내 갤러리들은 연 2회 ‘트라이베카 갤러리 워크’(Tribeca Gallery Walk)를 개최하고 있다. 첼시의 대형 갤러리인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와 페이스(Pace)갤러리도 이런 트라이베카 문화를 존중하듯 ‘52 워커’(52 Walker)와 ‘125 뉴버리’(125 Newbury)를 각각 오픈했다. 하였다. 이들은 기존 상업적인 갤러리 전시와 달리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실험적인 전시 기획을 하며 주변 갤러리들과의 상생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트라이베카는 소호 및 차이나타운과 인접하고 있어 문화적 다양성이 공존하는 동네다. 미술을 즐길 갤러리와 더불어 쇼핑을 할 수 있는 패션 브랜드숍과 다양한 음식을 경험할 수 있는 레스토랑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에 평소 미술에 관심없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갤러리를 방문할 수 있다. 반경 200m 안에 40여 개나 되는 갤러리가 밀집해 있으니 접근성도 매우 좋다. 작품 가격대는 첼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합리적이다. 필드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20~30대의 작가들 작품이 주로 전시되다 보니 미술품 컬렉팅 입문자나 젊은 컬렉터에게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트라이베카가 새롭게 뉴욕 내 미술 허브로 성장한 배경에는 조나단 트래비스(Jonathan Travis)라는 부동산 중개업자가 있다. 트래비스는 2010년 중반부터 트라이베카 지역에 관심을 보인 알렉산더 앤 보닌(Alexander and Bonin) 갤러리와 볼토라미(Bortolami) 갤러리를 고객으로 받으며 본격적으로 미술계 부동산 중개업에 몸담게 됐다. 트래비스에 대한 좋은 평판과 입소문이 갤러리들 사이에 돌면서 현재 트라이베카 내 위치한 갤러리들 대부분이 그와 함께 일궈낸 공간에 위치하게 됐다. P.P.O.W 갤러리, 그림(GRIMM) 갤러리, 1969갤러리, 캐나다(CANADA) 갤러리, 앤드루 크렙스(Andrew Kreps) 등의 갤러리들이 모두 그의 고객이다. 트래비스는 현재 부동산 중개업 외에도 미국 뉴욕 업스테이트에 비영리단체이자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울프 힐’(Wolf Hill)을 운영하고 있다. 선정된 작가는 두 달 동안 레지던시에서 작업할 수 있다. 이 작품을 판매해 벌어들인 수익 절반은 작가가, 나머지는 작가가 원하는 자선 단체에 기부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뉴욕의 갤러리 지도는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 시작해서 미드타운, 첼시, 다운타운으로 각 갤러리 규모에 맞게끔 변화하며 발전해 왔다. 최근 몇 년 사이 트라이베카가 이제 뉴욕 미술의 심장이 된 만큼 앞으로 트라이베카라는 커뮤니티에서 탄생하는 예술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글·사진(뉴욕)=엄태근 아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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