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요즘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바로 맥주와 소주·고추장 등을 판매하는 식음료 업체들의 가격 동결 선언이다. 하지만 한 발치 떨어져 바라보면 기업들의 이 같은 행보는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인플레이션에 따라 각종 원부자재 값이 뛰었음에도 가격을 동결하겠다는 것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세워진 기업의 존재 이유와 상충되기 때문이다.
‘가격 동결 선언’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 정부가 주류 업체에 대한 실태 조사를 진행하면서다. 소주 원가에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병 값이 올해 들어 18%가량 오르자 주류 업체들은 소주 가격 인상 검토에 착수했다. 그러자 정부는 에너지와 병 가격 상승 등 변수가 소주 값 인상으로 이어질 만큼 정당성이 있는지, 주류 가격 인상이 쉽게 이뤄지게 하는 독과점 체제는 아닌지 따져보겠다며 실태 조사를 벌였다. 전방위적인 압박에 주류 업체들이 결국 백기를 들며 가격 인상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여기에 농림축산식품부가 직접 식품 기업을 불러 모아 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주효했다.
이는 기업이 탐욕으로 상품 가격을 과도하게 올려 물가 상승을 가중시키는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을 정부가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정부가 스스로 인상 요인을 발생시켜놓고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모는 것은 무리한 처사”라는 토로가 쏟아져 나온다. 대표적인 게 맥주다. 정부는 다음 달부터 맥주의 주세를 기존 대비 3.57% 인상할 예정이다. 국산 맥주 출고가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0% 이상이다. 공공요금인 전기료와 난방비도 국과 찌개류를 오래 끓여야 하는 식품 공장의 부담으로 작용해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1월 산업용 도시가스 도매요금은 1년 전보다 40%가량 뛰었다.
정부는 연일 식품 업계에 원가를 절감해 가격 인상 요인을 흡수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이 감내한 가격 인상 요인은 언젠가 소비자에게 더 큰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당장 급한 불부터 끄자는 조삼모사식 물가 대책보다는 다양한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완만한 가격 인상을 이끄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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