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자 국내 벤처·스타트 업계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SVB에 자금을 예치하거나 투자한 국내 업체는 드물어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가뜩이나 위축된 벤처투자 분위기가 더 악화될 수 있어 우려하는 분위기다.
13일 벤처·스타트업계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고금리 여파로 국내 벤처 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이번 SVB 파산이 끼칠 투자심리 경색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항집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글로벌화 되어 있는 국내 스타트업들은 외국 소재 벤처캐피털로부터 자금 유치를 받는 경우가 있어 이번 SVB 파산 사태의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한동안 스타트업계 자금 시장이 경색돼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 역시 “금리 인상으로 인해 투자 시장이 경색된 것이 SVB 파산의 주 원인인 만큼 국내 투자 시장에서도 심리적 위축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2021년까지 코로나19로 인한 유동성을 타고 호황을 누렸던 벤처캐피털 시장은 지난해 급격한 금리 인상 기조로 크게 위축되고 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벤처캐피털 투자 금액은 6조 7640억 원으로 전년 7조 6802억 원 대비 9162억 원(11.9%) 줄어들었다. 올 들어 이같은 기조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스타트업 민관 협력기관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올 2월 국내 스타트업 투자금액은 2953억 원으로 지난해 2월(1조 1917억 원)과 비교해 75.2%나 급감했다.
SVB를 모델로 추진했던 기술금융 특화 은행 설립도 암초를 만났다. 벤처기업협회는 국내 벤처·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SVB 같은 은행이 필요하다고 보고 기술금융에 특화된 은행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이번 사태로 불투명해졌다. 협회 관계자는 "대전에서도 자체적으로 SVB와 같은 은행을 만들어 보려고 했던 것으로 안다"며 "이번 SVB 사태가 부정적으로 작용할 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벤처투자가 투자한 글로벌 펀드들 중 SVB에 투자금을 예치한 펀드들이 있어 자칫 손실을 볼 뻔했지만, 미국 정부가 예금을 전액 보증해 주기로 하면서 한시름 놨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기관인 한국벤처투자는 정부가 벤처캐피털에 출자하는 모태펀드의 운용을 책임지고 있다. 한국벤처투자 관계자는 "해외 벤처캐피털 글로벌 자펀드 중 일부 펀드가 SVB를 수탁사로 활용했으나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예금 전액을 구제해 주기로 결정돼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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