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5일 반도체 등 미래 먹거리 산업에서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국가첨단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했다. 하지만 삼성전자(005930) 등 대기업 취업이 보장되는 이른바 명문대 반도체학과에서조차 ‘정원 미달’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대학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으면 반도체 인재 부족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발표된 국가첨단산업 육성 전략에 따르면 정부는 첨단산업 변화 속도에 맞춰 대학 교육을 유연화한다. 정원, 학기제, 학과 개설 등 대학 운영에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하고 기업이 현장형·융합형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국가첨단전략산업 특성화대학(원)을 7월 지정하기로 했다. 또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할 수 있도록 정부 초청 장학생 확대와 국내 정착 인센티브 등도 논의한다. 특히 ‘산업인력혁신특별법’ 제정으로 우수 인재 육성과 유치를 뒷받침하기로 했다.
하지만 특별법에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담기지 않으면 반도체 인재 부족 문제는 고질화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게 시장의 목소리다. 정부가 이미 인재 양성을 위해 서울 주요 대학에 대기업 취업이 보장되는 반도체학과를 개설했지만 의대 등으로 이탈하는 비율이 높다. 실제 연세대·고려대·서강대·한양대 등 4개 대학의 2023학년도 반도체학과 정시 모집 인원은 47명이었는데 73명이 의대 진학 등을 이유로 등록을 포기했다.
1982년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수도권 대학의 ‘총정원 제한’을 걸어놓은 것도 걸림돌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앞으로 10년간 3만 명의 인력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원 규제 해제가 절실한 이유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인력 수요가 늘어나는 성장 산업 여부와 관계없이 학과별로 배출하는 인력은 고정돼 있어 국가 산업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며 “핵심 산업에 기여하는 인재에게는 확실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인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정부가 인공지능(AI) 반도체 대학원 3곳을 지정해 2028년까지 매년 3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전국 대학 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라며 “현장에서 예상하는 필요 인재 수와 괴리가 큰 만큼 더 많은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첨단 기술을 연구·교육·실증하는 ‘한국형 IMEC’을 구축하겠다는 내용도 눈에 띈다. 벨기에에 위치한 IMEC는 96개국 산학연 전문가가 참가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연구, 인력 양성 센터다. 1조 3000억 원 규모의 최첨단 설비를 보유한 IMEC을 본뜬 ‘한국형 IMEC’에 전 세계 인재들이 모여들도록 해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1단계로는 최첨단 실증 인프라를 갖춘 반도체 IMEC을 우선 구축하고 이후 배터리·바이오 등 다른 첨단 분야로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는 ‘마더팩토리 전략’으로 미중 패권 전쟁에서 우리 첨단 기술을 보호할 지렛대도 마련했다. 마더팩토리 전략이란 최첨단 설비를 갖춘 ‘마더팩토리’를 국내에 설치하고 해외에는 양산 공장을 구축하는 분업 체계다. 이는 미국이 반도체 보조금 지급 기준으로 경영 정보 등을 요구하는 데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양산 공장에서는 첨단 기술이 유출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앞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미국 보조금 지급 기준으로 기업 경영뿐 아니라 기술 정보도 상당 부분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세계에서 가장 투자하기 좋은 ‘투자 특국’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조세특례제한법을 조속히 개정해 투자 세액공제를 대폭 확대하는 한편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7월 ‘인허가타임아웃제’도 도입한다. 인허가타임아웃제는 지방자치단체 등이 특별한 사유 없이 60일 안에 인허가를 처리하지 못했을 경우 인허가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싱가포르 테마섹이나 아랍에미리트(UAE) 무바달라처럼 국내외 중장기 전략 투자를 책임질 국가투자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양자·AI 등 12대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R&D) 지원 예산은 매년 10%씩 확대해 2027년까지 5년간 25조 원 이상을 지원하기로 했다. 첨단산업 기술 R&D는 예비타당성조사를 신속히 추진해 기술 속도전에 밀리지 않도록 한다는 게 정부 복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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