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중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핵무기도 개발하고 군사적 공격력 강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지적한 뒤 “미국과 중국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격돌하고 있는 지금 한미 동맹 외에도 한일 동맹과 미국·호주·영국의 오커스(AUKUS)에 한국을 더한 코커스(KAUKUS)까지 추진해 이를 안보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1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일본이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게 최대한 성의를 보여야 하고,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우리가 미국에 할 말은 하고 받아낼 것은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자체 핵무장을 언급한 것은 유용한 안보 카드”라고 평가한 뒤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편협한 양자 외교에 국한된 것이 아쉽다”면서 “다자 외교의 넓은 틀 안에서 국제정치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열되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활로를 열어가야 하는가.
△국가 안보를 위해 할 수 있는 한 많은 카드를 확보해야 한다. 북한과 중국은 군사적 공격력 강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상황 대응이나 하는 외교 전략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그들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한국에 위협이 되는 행동을 하면 우리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줘야 우리의 미래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가 고려해볼 만한 카드로 뭐가 있을까.
△미중이 거의 전 분야에서 격돌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안보 안전망은 한미 동맹뿐이다. 선진국 중 이렇게 안전망이 좁은 나라는 없다. 이제 이를 더 확대해야 한다. 예컨대 호주는 미국·영국과 오커스를 결성해 비핵 국가 최초로 핵 잠수함을 보유하게 됐다. 한국도 이러한 안보 협력을 구상해야 한다. 오커스에 한국이 가입해 코커스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미국·인도·일본·호주 4개국으로 구성된 ‘쿼드(Quad)’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할 필요가 있다. 일본과 동맹을 체결해 궁극적으로 호주까지 염두에 두는 동아시아 다자 동맹을 추진하는 것도 활용할 만한 카드가 될 수 있다.
-‘한일 동맹’을 추진한다면 국민들의 반감이 클 듯한데.
△지금 중국과 러시아가 제국주의적 현상 변경 세력으로 변모하고 있다. 신냉전을 넘어 최악의 경우 동아시아에서의 전쟁까지 상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맞서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면에서 일본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중국의 위협과 북한의 핵에 대응한다는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은 이해관계가 같다. 한국과 일본은 같은 민주주의국가이면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서 번영하는 국가다. 공동의 위협 속에 있는데 동맹을 추진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한일 동맹을 통해 한미일 동맹 체제를 구축하고 호주까지 동맹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북중러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
-코커스를 구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상황에서 쉽지는 않다. 그래도 우리가 어떠한 형식이든 핵 잠수함을 보유하고 핵보유국과 연대하는 다자 협의체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북중러의 도발적 행위를 억제하는 유력한 카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술 핵을 들여오자, 핵 잠수함을 가져오자고 말하면 미국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펄쩍 뛰는 이들이 있는데 우리의 안보를 위해 필요한 카드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우리의 안보를 더 강화하기 어렵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얻어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 우호적 한일 관계 복원은 단번의 조치로는 부족하고 지속적인 후속 조치들이 뒤따라야 한다. 신뢰를 깬 책임이 한국에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이 적극적으로 신뢰 회복 조치를 취하려 하지 않겠지만 일본도 강제 동원 피해자 문제에 대해 최대한 성의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한일 정상이 특히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이 있다면.
△일단 안보 부문에서 한일 협력 강화의 진전을 이뤄야 한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 도발, 중국과 러시아의 동북아시아 질서 변경 시도에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안보 시스템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경제 분야의 협력 강화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유럽이 블록화하는 상황에서 양국이 공동 대응하면서 경제적인 공통 이익을 나눠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일 관계의 발전이 지속 가능할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강제 동원 피해자 해법을 두고 논란이 많다.
△한일 갈등은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하는 과제다. 다만 언제 어떻게 푸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었는데 지금 그 때가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규범이 지켜지는 국제사회 질서로 중국이 들어올 수 있도록 동북아에서 한미일 민주주의국가가 하나로 모여야 하는데 한일 관계가 계속 역사 문제로 진전되지 못해 한미일 모두가 답답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이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확고한 듯하다.
-그래도 피해자들의 반발이 크다.
△현 상황에서는 누구도 모두가 만족하는 해법을 내놓기 쉽지 않다. 개인 간의 약속이 있듯이 국가 간에도 약속이 있다. 그 약속이 자꾸 뒤집히면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같이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국제 관계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나마 차선이라고 본다. 1965년에 한 약속을 다시 재해석해서 흔드는 한국과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일본의 반발을 일부 수용할 필요가 있다.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중국의 위협을 저지하기 위한 확장 억지력에 대한 확약을 받아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반도체 생산을 자국에 집중시키려는 미국의 홈쇼어링 전략으로 인한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없도록 해법을 찾는 것도 중대한 과제다. 안보상의 이유로 미국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 민감한 정보까지 요구하고 있다. 우리도 안보상의 이유로 미국에 경제적 안전망을 구축해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우리가 얘기할 것은 얘기하고 받아낼 것은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
-북한의 도발을 중국과 러시아가 두둔하는 일이 반복되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북중러가 한 팀으로 움직인다고 보고 북핵 문제에 임해야 한다. 북핵 개발도 중국과 러시아가 뒤에 있지 않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러는 핵 기술이전과 핵 개발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했을 뿐 아니라 유엔 제재까지 막아주고 있지 않는가. 따라서 이제는 중러를 끌어들여서 북핵 문제를 풀어보자는 생각으로 중러와 잘 지내야 한다는 식의 순진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계속 중러 눈치를 보다가는 그들에게 예속되고 미일에도 대우받지 못하는 외톨이로 전락할 수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을 흡수하게 되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신뢰가 약해져 중국은 무력으로 아시아를 자국의 영향권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 대만이 중국의 무력 통일 대상이 되지 않게 우리도 미국과 함께 억지 활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대만 사태에서 한국이 중립을 지키거나 빠지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일이 아예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미국·일본 등과 함께 공동 대응을 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자체 핵무장을 언급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체 핵무장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북중러가 우리 입장에서 굉장히 위협적인 방향으로 나가면 우리도 언제든 핵무장을 포함한 새로운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놓은 것은 잘한 일이다. 또 그 이후에 더 이상 발언이 확산되지 않게 억제한 것도 일본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고 미국의 우려를 키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명했다고 본다. 우리가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미국과의 공조 속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할 때라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자체가 위협을 받는 국제 질서 대변동의 시기가 아니겠는가.
-윤석열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면.
△외교를 양자 관계로 국한시키기보다는 국가의 여러 안전망 확보를 위한 다자 외교를 구상했으면 한다. 한국이 단 한번도 세계대전에 당사자로 참여해본 적이 없어서 국제정치가 양자 관계만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나라들과의 관계 속에서 전쟁도 발생하고 질서가 형성된다는 것을 잘 놓치는 것 같다. 노태우 정부 때 북방 정책으로 탈냉전 국제 질서를 선도했던 것을 빼고는 이전 어느 정부도 양자 관계를 넘어선 국제 질서를 염두에 두고 외교정책을 펼친 적이 없다. 한국의 국력이 커진 만큼 이제는 자유주의 질서를 다른 선진국과 함께 이끌 수 있도록 외교적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
◆He is…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신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위스콘신대(매디슨)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를 거쳐 2000년부터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국제학연구소 소장과 국제협력본부 본부장을 지냈다. 또 한국 유엔협회 자문교수와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한국협의회 의장,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등을 맡아 폭넓게 활동했다. 반지성주의 사회의 실상을 파헤쳐 보여준 청년 세대를 위한 교양서 ‘도발하라’를 2016년에 썼다. 공저로는 ‘저출산 고령화의 외교안보와 정치경제’ ‘한반도 2022 비핵화 평화정착 로드맵’ ‘노태우 시대의 재인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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