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SVB) 등 미국 지역은행들의 파산에 이어 세계적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의 재무건전성 문제까지 불거지며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고조되자 금융 당국이 은행권에 위기 대응을 위한 건전성 강화를 주문하고 나섰다. 최근 은행 대출의 신규 연체가 늘면서 연체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어 국내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위기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16일 금융위원회는 전날 개최한 제3차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실무작업반 논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2~3분기 중 ‘경기대응완충자본(CCyB)’ 부과를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CCyB란 신용팽창기에 은행에 0~2.5%의 추가 자본을 적립하도록 한 뒤 신용경색이 발생하면 자본적립 의무를 완화해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국내에서는 2016년에 도입됐으나 현재까지 적립 수준은 0%로 사실상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급증한 여신의 향후 부실화 가능성에 대비해 추가 자본적립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적립 신호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에도 전염병, 지정학적 리스크 등 외부 충격에 대비해 상시적으로 자본버퍼를 유지하도록 하는 ‘경기중립적 CCyB’ 도입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대응완충자본은 해외에서도 시행 중이다. 영국은 1%인 경기중립 버퍼를 올해 7월부터 2%로 상향하며, 스웨덴은 6월부터 2%의 경기중립완충자본을 적용한다. 호주 역시 올해부터 1%를 기본 수준으로 하는 경기대응완충자본 체계를 구축했다.
당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국내 은행의 연체율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 원화 대출 연체율은 1월 말 기준 0.31%로 지난해 말보다 0.06%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1월 말과 비교하면 0.08%포인트나 올랐다. 국내 은행 대출 연체율이 0.3%대에 진입한 건 2021년 5월 이후 20개월 만이다.
금융 당국은 “코로나19 기간 낮아졌던 연체율이 최근 대출금리 상승 등에 따라 점차 상승하고 있으며 코로나19 지원 조치에 따른 지표 착시 가능성을 고려할 경우 실제 연체율은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 자본적정성 평가 척도인 보통주자본비율(CET1) 기준으로도 국내 은행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12.26%로 미국(12.37%), 영국(15.65%) 등 주요국 대비 상대적으로 미흡한 상황이다.
‘스트레스 완충자본’ 제도도 도입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주기적으로 은행에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하도록 해 손실 흡수 능력을 점검하고 있지만 테스트 결과가 미흡한 경우에도 개별 은행에 추가 자본적립 의무 부과 등 조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라며 “은행별 스트레스테스트 결과에 따라 추가 자본적립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 도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 금융위는 현재 진행 중인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 도입, 예상손실 전망모형 점검 체계 구축 등도 차질 없이 이행할 방침이다.
한편 주요 은행의 성과급 등 보수 체계 현황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당국이 집계한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지난해 성과급은 전년 대비 약 10% 증가한 총 1조 9595억 원이었다. 퇴직금은 2021년보다 약 11% 증가한 1조 5152억 원이었다. 5대 은행이 지난해 지급한 성과급과 퇴직금을 합치면 3조 4747억 원으로, 지난해 비이자 이익(3조 5626억 원) 합계에 맞먹는 수준이다.
하지만 성과급 환수나 유보 정책에는 미온했다. 일부 은행은 제재·형사처벌, 재무제표 허위 작성 등을 환수 사유에 포함하지 않고 있으며 제재 절차 진행 등을 유보 사유에 포함하지 않은 경우도 존재했다. 이와 관련해 해당 은행에서는 환수 사유에 형사처벌 등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당국은 은행장 등의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수위원회가 아닌 지주회장이 은행장의 정성평가 부문을 직접 평가하는 곳도 있었다. 또 은행장의 단기 성과를 평가를 할 때 정량지표 중 ‘수익성’의 비중이 평균 40%에 육박해 30% 미만인 외국계 은행과 대조적이었다. 또 장기 성과 평가시 정성평가 없이 정량평가만 진행했으며 수익성 비중은 평균 77%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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