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근로시간 최대 69시간 개편을 발표하자마자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더니 이제는 또 ‘60시간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정부가 기업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제도 개편을 추진하는지 의심스럽네요. 도대체 정부가 생각하는 노동 개혁의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20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중소·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시간제도 개편에 대한 입장을 묻자 이 같은 질문이 되돌아왔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정부의 근로시간에 대한 태도에 중소벤처기업 현장은 그야말로 혼돈에 휩싸이며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고질적인 인력난 때문에 정상적으로 납품을 하려면 주 60시간 근무도 모자란데 정부는 갈팡질팡하고 있고, 근로시간제도 개편에 환영의 목소리를 냈던 경제단체들은 정부 눈치를 보며 입을 닫아버린 상태다. 획일적인 근로시간 규제 때문에 생존을 위해 법까지 어겨야 했던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이번 개편에 기대가 컸지만 결국 ‘표심’에 흔들리는 정부를 보며 크게 실망하는 분위기다.
건설기계 정비업 A사의 대표는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우리가 일을 더하겠다고 하는데 왜 일을 못하게 막는지 답답하다”면서 “근로시간제도 개편 소식에 환영하고 기대를 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에 허탈한 마음뿐”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30인 이하 중소기업들은 주 52시간 제도 시행 이후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로 겨우겨우 버텨왔다”며 “논란 속에 지난해 추가연장근로제가 일몰된 후 정부가 계도 기간을 1년 부여했지만 결국 범법자가 될 길을 피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건설업 B사의 대표 역시 “건설장비의 경우 주 52시간제로 인해 오전 6시에 투입되면 오후 3~4시에 일을 끝마쳐야 한다”며 “다음 날 현장 투입을 위한 장비 점검 시간마저도 가질 수 없어 결국 현장을 돌아가게 하려면 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특히 최근 ‘최대 69시간 근무→60시간 이상은 무리→60시간 이상도 가능’으로 정부 입장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경기도 남부에서 소비재 납품업을 하는 매출 1000억 원대의 한 업체 관계자는 “현재 납품 기한을 맞추기 굉장히 어려워 주문 기업들과 매번 협의해 납기를 연장하는 등 간신히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갈팡질팡하고 있어 실망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60시간이든 68시간이든 빨리 확정해 불확실성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정부의 이번 근로시간제도 개편이 현실을 충분히 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번 제도 개편에 크게 반발하고 있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비중이 적은 중소기업에도 대기업과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현실을 모르는 정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한 금형 업계 관계자는 “업종 특성상 MZ세대는 뿌리산업 현장에는 거의 없고 대부분 정년까지 지난 근로자들”이라며 “설사 MZ세대 근로자가 있더라도 가정이 있는 직원들은 오히려 더 많은 급여를 받기 위해 연장근무 등에 찬성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근로시간을 줄이려는 정부 정책에 대해 불만이 크다. 국내에 단기 체류하면서 소득을 올려야 하는 입장인데 근로시간 제한이 강화되면 이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외국인 근로자가 직원의 90%라는 중소 제철업체 C사의 대표는 “직원들 대부분이 고용허가제 외국인 노동자(E-9 비자)로 입국해 5년 동안만 일할 수 있다 보니 목돈을 버는 데 유리한 근로시간 유연화를 반기는 분위기였다”면서 “하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불만이 커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철근 제조 같은 힘들 일을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업종의 특성을 반영해 근로시간제도의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노사 협의가 이뤄지고 근로자가 동의할 경우 업종 특성상 특정 기간에 일이 몰릴 때는 보다 탄력적으로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중소기업 업계와 근로자 간에도 의견이 다르다 보니 방향성을 잡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근로시간제도 개편에 대한 토론회 등을 통해 업계와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합리적인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