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차로 전환하거나 준비 중인 자동차 부품사가 40%를 밑돈 것은 우리나라가 전기차 강국으로 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기차와 수소차 등 미래차 전환을 준비 중인 자동차 부품 업계는 특히 자금과 전문 인력, 원천 기술 등 세 부문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하나같이 기업 개별 단위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더욱이 기업 규모에 따라 미래차 전환 속도와 인력 현황, 기술 수준이 제각각인 점도 ‘쾌도난마’식의 해법이 존재할 수 없게 한다. 완성차 업계는 물론 정부가 나서 미래차 전환을 추진 중인 부품사들의 애로 사항을 면밀히 검토하고 맞춤형 대책으로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자동차 관련 단체가 국내 부품사 35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 자동차 산업 실태 조사’에는 국내 부품사들의 미래차 준비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우선 전기차 시장 확대에도 불구하고 응답 기업의 절반 이상이 내연기관차에 매출의 90% 이상을 의존하고 있다. 응답 기업의 56.4%는 엔진·변속기 등 내연기관 전용 제품을 생산하고 있고 42.9%는 조향·현가 등 범용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전기차·수소차 전용 제품을 만드는 곳은 2.6%에 불과했다.
현대차(005380)·기아(000270) 등 국내 완성차 업계는 2030년까지 323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해 글로벌 시장점유율 12%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일본 도요타, 독일 폭스바겐에 이어 사상 최초로 3위에 오른 기세를 전기차 시대에도 재연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기차 생산의 기반이 되는 부품사들의 내연기관차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아 전동화 전환이 지연되면 2030년 글로벌 전기차 3강 진입은 공염불이 될 수도 있다.
국내 부품사들의 미래차 전환이 지연되는 이유로는 △자금 부족 △인력 확보의 어려움 △원천 기술 부족 등이 지목된다. 이는 실태 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미래차 사업 추진과 관련한 애로 사항으로 응답 기업의 51.5%가 자금 부족을 꼽았고 전문 인력 부족(31.8%), 원천 기술 부족(7.6%) 등이 뒤를 이었다. 충남에 소재한 1차 협력사 관계자는 “부품사 입장에서도 미래차 부품을 서둘러 개발하고 싶지만 기술도, 개발 자금도 모두 부족하다”며 “정부나 기업에서도 각종 기금을 마련하고 저리 대출을 시행하는 등 지원책을 내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까다로운 지원 조건 탓에 정책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관계자도 “중견 부품사는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수백억 이상이 들어가는 연구개발비를 선제적으로 지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정보력도 부족해 어떤 미래차 부품이 유망한지 파악하는 데도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투자 여력이 있는 부품사들도 전문 인력 확보에 고충을 겪으면서 미래차 전환이 늦어지는 사례도 빈번하다. 기존 내연기관과 달리 전기차에는 배터리와 구동 모터, 충전 설비, 원자재 공급망 등의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산업 현장에서 제때 수급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 인력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인건비는 오르고 어렵게 채용하더라도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일이 잦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전기차 산업에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업종 안에서도 상방 이동이 활발하게 일어난다”면서 “임금을 맞춰줄 수 없는 중소 부품사는 어렵게 확보한 인재를 뺏기게 되고 그만큼 전동화 전환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업과 정부도 부품 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해 10월 현대자동차그룹은 부품사의 전동화 전환을 돕기 위해 5조 2000억 원 규모의 상생 협력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중장기 지원을 바탕으로 부품사가 신사업 투자를 지속하고 미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정부도 미래차 전환을 시도하는 부품사의 숨통을 틔워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저리로 대출을 지원하는 사업이 대표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시중은행과 협력해 중소 자동차 부품사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해주고 정부가 이자의 일부도 부담하고 있다.
업계는 이런 대책들과 별개로 부품사들이 처한 여건에 맞는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직 미래차로 전환하지 못한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금뿐 아니라 부품사의 진출 분야와 인력 확보, 기술 개발, 수요처 발굴 등 종합 컨설팅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품사의 경우 미래차 아닌 기존 기술을 활용해 유사 업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업종 전환까지 고려한 지원 방안을 제시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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