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반 세기 전인 1970년 뉴욕 말보로(Marlborough) 갤러리에서는 필립 거스통(Philip Guston·1913~1980)의 전시가 열렸다. 넓은 캔버스 위에 책, 신발, 벽돌과 같은 사물이 투박하고 단순하게 처리된 그림들. 거스통의 신작은 구상 회화였다. 당시 많은 평론가와 예술가들이 질타했다. 컬렉터들의 반응도 싸늘했다. 전시되었던 작품들 중 단 하나의 페인팅만 판매됐다. 이 전시는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로버트 마더웰, 후앙 미첼과 같은 작가들의 ‘추상 표현주의 회화’가 추앙받던 시절에 낯설고 반항적인 시도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전시에 포함됐던 다수의 작품들은 20세기 미국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때의 걸작들과 함께 거스통의 50여 년 작업 여정을 경험할 수 있는 대규모 회고전 ‘필립 거스통 나우(Philip Guston Now)’가 워싱턴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열리고 있다. 회고전에는 150여 점이 넘는 회화와 드로잉이 전시 중이다. 지난해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에 열린 후 워싱턴으로 왔고, 순차적으로 텍사스 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Houston)과 런던 테이트 모던 (Tate Modern)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회고전은 원래 2020년에 예정돼 있었으나,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과 코로나 시국으로 상황이 격동적으로 변하면서 연기됐다. 전시 제목이 ‘지금'인 만큼 ‘현재’ 상황을 잘 대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주최 측의 염려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흔히 잘 알려진 필립 거스통의 시그니처 스타일은 파스텔톤 핑크색 바탕에 그려진 담배꽁초, 병, 구두와 같은 사물과 우스꽝스러운 만화적 캐릭터 형상이다. 하지만 이는 1970년 말보로 갤러리 전시 이후 나타난 그의 후기 구상 회화 작업 스타일로 작가 작업의 일부분일 뿐이다. 거스통의 초기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벽화 작업부터, 구상 회화, 추상 회화순으로 이어질 만큼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이처럼 거스통은 시류를 따라가기보다 자신이 속했던 사회적 환경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며 작업 스타일을 변형했다.
6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거스통은 소위 뉴욕에서 잘나가는 추상 표현주의 작가 군에 속했다. 1962년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선보인 추상 회화 전시 또한 성공적으로 마치고 작가로서 정상급 궤도를 달리고 있었다. 이번 회고전에는 거스통의 50-60년대 추상회화들도 다수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거스통은 추상적 표현 방법에 한계를 느꼈다. 60년대 미국은 장기간 지속된 베트남 전쟁으로 피로감에 물들었고, 60년대 후반 본격으로 일어난 오렌지버그 대학살과 디트로이트 폭동 같은 시민 평등권 운동으로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거스통은 “미국의 추상 예술은 현실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느끼고 있는 것을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할 만큼 추상 표현주의에 깊은 회의감을 가졌다.
이에 거스통은 돌연 1967년 미국 업스테이트의 우드스톡(Woodstock)이라는 작은 동네로 이사한 후, 새로운 구상 회화 작업에 몰두한다. 그의 초기 작업들이 조르조 디 키리코와 같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에 그려진 구상작업들은 사물의 본질에 보다 집중한 느낌을 준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다리, 구두, 책, 벽돌, 자물쇠 등이 그의 그림 소재로 등장한다.
또한 그림에서 헝겊을 뒤집어쓴 고깔 형상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만화 캐릭터 이미지다. 코믹스러운 이미지 이면에는 거스통이 어렸을 적 겪었던 시대적 아픔이 담겨있다. 이 이미지는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미국 내 비공식 극우단체로 유대인과 소수 인종인 흑인을 탄압하였던 KKK(Ku Klux Klan)를 상징한다. 이 단체는 아직도 미국 내 존재한다. 실제로 유대인이었던 거스통 가족은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 탄압을 피해 미국 LA로 이주해 정착했지만, 미국내에서도KKK단의 핍박을 받았다. 끝내 거스통의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까지 끊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어린 거스통이 겪었던 100여 년 전 아픈 경험은 1960년대 경찰들이 시민 평등권 운동에 참가한 시민들을 탄압하였던 사건을 이어, 최근 2020년 백인 경찰의 무차별한 폭행으로 목숨을 잃게 된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에까지도 자연스럽게 투영된다.
1980년 사망하기 이전까지 거스통은 70년대에 새롭게 내놓은 구상 작품들로 지속적인 혹평에 시달렸으며, 자신의 우드스톡 작업실에 은둔하며 작업에 더 집중했다. ‘추상 표현주의’는 어찌보면 2차 대전 이후 뉴욕으로 몰린 유럽의 예술가들을 미국의 예술가들과 같이 수용해 국가적 차원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미국 미술'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거대한 추상 표현주의의 물결을 거부하고, 자신이 생각했던 신념을 표했던 거스통의 작업은 당시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가 사망한 후 재조명됐다.
이는 거스통의 개인적 관점을 넘어서 동시대 미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많은 비평가, 대중, 더 나아가 소셜미디어의 여론이 현재 시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작품이 나중에도 과연 의미가 있을까? 반대로 부정적 여론으로 프레임 된 미술은 과연 다르게 해석될 여지는 없을까? 예측 가능하지 않는 미래를 상상하며 현재의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도 적절히 필요해 보인다. /글·사진(뉴욕)=엄태근 아트컨설턴트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