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반도체 보조금 신청 절차를 안내하면서 예상 수율(결함 없는 합격품의 비율) 등 영업 기밀을 담은 재무 계획을 엑셀 파일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를 통해 보조금 지급 규모를 결정하고 향후 반도체 기업의 초과이익까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반도체법의 ‘대중(對中) 가드레일’로 중국 투자까지 제한된 가운데 각종 민감한 정보 요구로 미국 내 투자 리스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상무부는 27일(현지 시간) 반도체 보조금 신청 절차 세부 지침에서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이 예상 현금 흐름 등 수익성 지표를 제출할 때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산출 방식을 검증할 수 있는 엑셀 파일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상무부는 “재무 계획은 반도체법 심사의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지원금 규모와 유형·조건을 검토하는 데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또 제출하는 엑셀 파일에 반도체 공장의 웨이퍼 종류별 생산 능력, 가동률, 예상 웨이퍼의 수율, 연도별 생산량 등의 수치를 포함하도록 했다. 통상 수율은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영업 기밀로 분류된다. 또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소재·소모품·화학품과 공장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와 연구개발 비용도 입력하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97장짜리 ‘노동력 개발 지침’도 내놓아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들이 직원을 어떻게 고용하고 교육하며 유지할지에 대한 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미국 정부가 보조금의 반대급부로 요구하는 자료의 수준이 선을 넘었다며 난감해하는 모습이다. 반도체 기업의 한 임원은 “이미 수많은 대외비를 요구하는데 거기서 추가로 또 예민한 정보를 내놓으라고 하니 할 말이 없다”며 “실제로 보조금 신청서를 제출하는 기업 중 미국이 바라는 수준의 정보를 내놓는 곳이 정말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의 요구가 투자 자체를 재검토해야 할 정도의 수준이라는 점에서 실질적인 강제 사항으로 이어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세부 제출 항목 등은 기업과 추후 협상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게 되지 않겠냐”고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